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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8일 목자되신 하나님을 따르면 시편231-6

 

어떤 목사님이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자녀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시편 23편을 영어로 읽었습니다.

영어로는 1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소리를 쳤습니다. “But Dad, I want!” 그래서 목사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What do you want?” 아들이 대답합니다. "I want to Toys."

 

이것이 비난 이 목사님의 아들만의 문제일까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소원들로 가득차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아서 목마르지 않습니까?

수많은 소원과 욕구로 살아가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인생인데 다윗은 어떻게 나는 부족함이 없어라.”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많은 성도들이 시편 23편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단어가 부족함이 없어라입니다. 아마도 부족함이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의 최우선 조건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한 고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족함이 없다가 아닙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고백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지 않으면 그 다음 모든 고백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욕망을 포기하면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부족함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지닌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때문에 인간에게 욕망을 제거해 버리면 이상한 인간이 됩니다.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비뚤어진 욕망, 잘못된 욕망이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를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목숨처럼 아끼던 재산을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것은 4배로 갚아 주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에는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빈 항아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채워지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진다면 누구나 삭개오처럼 예수님 때문에 만족합니다.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거룩한 욕망, 의로운 욕망, 선한 욕망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Mt 6:33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거룩한 욕망을 가지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세상적인 욕망에 끌려 다니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욕망을 가질 때 불의한 욕망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선한 욕망을 가질 때 악한 욕망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양에게는 좋은 풀, 좋은 물, 안전하게 쉴만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양은 그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양은 목자를 구하고, 목자를 사랑하고,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목자의 인도를 잘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양은 목자만 있으면 배고픈 것, 목마른 것, 안전한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어떤 교회에서 성경 암송대회를 하는데 시편 23편을 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초신자가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순서가 되어서 앞에 나가서 시편 23편을 암송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해서 1절을 외우고 그 다음절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1절만 반복하다가 그 의미가 깨달아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어 내 인생을 인도한다면 내게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이렇게 암송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상 끝.”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부족함이 없는데 뭐 할라고 더 외우겠습니까?”

 

다윗은 왜 여호와가 자신의 목자가 되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을까요?

 

1. 여호와는 선한 목자시다.

23: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Ps 23:1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다윗이 하나님만 나의 목자가 되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은 선한 목자라는 증거입니다.

세상에 양을 치는 모든 목자가 다 선한 목자인 것은 아닙니다. 악한 목자, 이기적인 욕자, 양의 탈을 쓴 이리같은 목자도 있습니다. 선한 목자, 좋은 목자를 만나는 것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최고의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세상과 부모님을 원망하며 불행한 인생을 살았으리라 100% 확신합니다.

하나님과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는 내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때문에 세상을 용서할 수 있었고, 부모님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려면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합니다.

하나님 선한 목자님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선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8번째 아들이며 아버지의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싸움을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울 왕에게 다윗이 자신이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나아가겠다고 합니다. 사울 왕이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골리앗과 어린 내가 싸울 수 없다고 이야기 하자 자신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양떼를 지켰는데 사자나 곰이 양을 물어 가면 쫓아서 사자와 곰을 죽이고 사자와 곰의 입에서 양을 구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삼상 17:37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1Sm 17:37 The LORD who delivered me from the paw of the lion and the paw of the bear will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is Philistine." Saul said to David, "Go, and the LORD be with you."

다윗은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구해 주신 분이 바로 참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친히 좋은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Jn 10:11 "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신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님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 선한 예수님이 내 인생의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죄를 위해서, 나를 사랑해서 돌아가신 목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려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주님의 양이 됩니다. 또한 좋은 양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를 주님의 양이라고 말할 때 아무도 거부감을 갖지 않습니다.

양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양같다라고 말할 때 착하다, 순하다, 깨뜻하다라는 뜻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양을 비유하실 때 다른 의미로 사용하신 일이 많습니다.

양은 약하다. 미련하다. 고집불통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동물로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양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약하고, 무능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반드시 나같은 선한 목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은 목자가 없는 양이 죽은 목숨이듯이 나는 예수님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다.”라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양은 강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능하고 뛰어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양은 약하고, 지혜롭지도,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은 꼭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2. 선한 목자를 따르면 부족함이 없다.

23: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Ps 23:2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선한 목자는 양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고, 새 힘을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양은 먹을 풀이 필요합니다. 마실 물도 필요합니다. 그것을 찾는 일을 양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합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을 모든 것이 채워져서 필요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않됩니다.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배고프고, 목이 마르고, 연약하고, 길을 몰라 답답합니다. 그런데 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합니까?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지순례를 가보지 못해서 이스라엘의 지리와 기후를 체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와 책을 통해서 이스라엘 지리와 기후 그리고 풍습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건기에는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메르고 매우 건조한 기후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이 없는 광야에서 산다는 것은 거의 죽음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일 년에 푸른 풀이 돋아나는 시기는 겨우 3개월에 지나지 않고 이른 비가 내리는 10월 경 푸른 풀이 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목자들은 좋은 꼴을 양들에게 먹이기 위해서 좋은 초지를 향해서 수백 km를 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양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양을 지키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찾아 주는 목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지가 부족하고 물이 부족하지만 부지런하고, 양을 사랑하고, 양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만 있으면 양은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지만 나의 사정을 잘 아는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것을 알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과거 40-50년 전에 비해서 너무나 풍족하고 최고의 문화 혜택을 누리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들은 부족함을 호소합니다. 목마르다고 합니다. 풍요속에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품 광고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만족입니다.

어떤 상품이든지 광고의 마지막에 대부분 이 상품은 당신을 만족시켜 드릴 것입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이 광고는 현대인들은 물건을 통해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도 됩니다.

원하는 제품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하는 자동차, 원하는 집, 원하는 TV, 원하는 최첨단 냉장고, 최신식 핸드폰만 있으면 만족할 것이라고 광고주도, 소비자도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가정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님들도 만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떼를 쓰고 울 때 자녀들이 원하는 음식, 원하는 선물, 원하는 장난감을 주고 달래려고 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자녀들이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만족은 외부의 환경이나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4:11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Php 4:11 I am not saying this because I am in need,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whatever the circumstances.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떤 형편이나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이런 비법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억울하게 복음을 전하다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강도를 만나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죽도록 고생했는데 바울은 행복했다고 고백합니다. 만족했다고 고백합니다.(고후1123-28) 행복했습니다. 만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이런 일들을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2Co 12:10 That is why, for Christ's sake, I delight in weaknesses, in insults, in hardships, in persecutions, in difficulties.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이들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때로 헐벗고, 굶주리고, 모욕을 당하지만 그것을 자랑스럽게, 행복하게 여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아무것도 부족함을 모르는 환경이자 처지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를 때 비록 눈앞에 풀 한포기 보이지 않고, 샘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이라고 할지라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은혜를 누릴 줄로 믿습니다.

 

3. 선한 목자를 따르면 두려움이 없다.

23: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Ps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다윗은 선한 목자를 따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 말은 두려워 할 만한 적들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숨에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적들이 우글거리는 속에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양은 자신을 보호할 아무런 무기가 없습니다. 빠른 발도,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습니다. 그런 무능력한 양을 보호해 주시는 것이 목자입니다.

양들이 삭막하고, 위험을 도사리는 초원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이유는 양들을 보호하는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바람 앞에 등불 같은 동물입니다. 늑대가 나타나면 도망갈 수도, 피할 수도, 제대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됩니다.

양들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는 곳에는 언제나 사자, , 늑대같은 맹수들이 우글거립니다.

게다가 양은 한번 뒤집어 지면 거북이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무력한 짐승입니다. 목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대로 죽습니다. 양은 사방에 적들로 둘러 쌓여 있을지라도 목자가 함께 하면 두려워하지 않고 안전하게 풀을 뜯고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가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양떼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만일 험한 계곡을 가다가 위험한 절벽 가까이 가면 목자는 긴 막대기로 양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합니다. 사자와 곰 같은 맹수들이 나타나면 목자는 막대기를 써서 맹수를 물리치고 양떼들을 지킵니다.

 

양은 자신들은 연약하고, 무지하고, 무능하지만 자신들을 지키는 목자는 충분히 맹수들을 막아내고, 물리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전하게 초원을 누빌 수 있습니다. 양들은 목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로 자신들을 지킨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양들은 맹수들이 나타났을 때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목자 뒤로 숨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를 따르면 아무리 죽음의 골짜기에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삶에 수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총기를 난사해서 목숨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교통사고의 위험도 있습니다. 소리도 없이 불치병이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이상기후 때문에 천재지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매일 삼길자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위험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Is 41:10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4. 선한 목자를 따를 때 방황하지 않습니다.

23: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Ps 23:5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23: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Ps 23:6 Surely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다윗은 선한 목자를 따르면 원수들이 무너뜨리려하고, 방해하고, 공격하지만 주님께서 원수들 앞에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시고 상을 베풀어 주시고 나중에는 반드시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방황을 한다는 것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양들이 그렇습니다. 어디로 가야 초지가 있는지? 어디로 가야 물이 있는지? 방향을 모릅니다. 또 언제까지 먹이 활동을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의 울타리로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목자가 없는 양은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를 따르면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고 할지라도 광야에서 방황하지 않고 안전하게 자신의 울타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양처럼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방황하는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청년 때는 청년으로 직업이 내 적성에 맞을까? 어떤 배우자와 결혼을 해야 할까? 결혼을 한 다음에는 올바른 자녀 교육이 어떤 것일까 때문에 방황을 하기도 합니다.

여성 분들은 아마도 갱년기가 인생의 가장 큰 고비였다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중년의 남성들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이제까지 일을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내가 제대로 된 인생을 산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방황을 하기도 합니다.

삶을 산다는 건 어쩌면 끊임없이 방황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반복되는 방황 속에서 어떤 방황은 짧을 수도 있고, 어떤 방황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길어질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야망, , 목표를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향하는 종착지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열심히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의 종착지가 없는 인생은 방황하는 인생입니다.

, 권력, 인기, 야망도 인생의 종착지가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종착지는 나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서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 천국입니다.

 

선한 목자를 따르는 양은 자기주장, 자기의지, 자기계획, 자기 생각이 없습니다. 어리석어 보이고, 무모해 보이고,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정처없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면서 방황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선한 목자가 없는 양이 진짜 방황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유리하고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의 청주에서 어머니, 동생, 친구 등 11명과 무심천 발원지로 산행을 가다가 중간지점에서 날 벌레 때문에 먼저 내려간다고 하산하다가 조은누리양이 실종이 되어 무려 11일 만에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지만 의사소통이나 기억력에는 큰 지장이 없는 여중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대낮에 평소에 익숙하던 길을 가다가 길을 잘 못 들어서 11일 동안 산속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서 만족하는 삶, 두려움이 없는 삶, 방황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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