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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9일 신앙은 반응이다. 118-22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배웠습니까? , 너무 잘 아시네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수평적으로 이웃과 나와의 관계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일상에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서 그렇게 중요한 관계가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과 관계가 좋고, 이웃과 관계가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에 만나면 늘 샬롬이라고 인사를 합니다. 즉 하나님과 관계가 좋냐? 이웃과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사를 하면서 관계에 대한 안부를 물어 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좋아야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려면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하고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가 좋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좋고, 이웃과 관계가 좋을 수 있을까요? 아마 누구나 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고, 이웃과 관계가 좋게 하고 싶을 것입니다. 관계가 좋으려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반응이 좋아야 합니다.

몇 일 전에 함께 신학교에 다닐 때 저에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따랐던 여동생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목회자와 결혼을 해서 목사 사모님으로 교회를 잘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 목사님이 이런 일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런 일은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남편 목사님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도 좋아하시고, 성도들도 좋아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주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남편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에 관심도 가지고 계시지만 그런 남편에 대한 너의 반응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실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바리새인들에게 붙잡혀 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은 돌로 쳐 죽이라고 모세의 율법이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돌로 쳐 죽이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런 반응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틀렸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반응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8:10 예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Jn 8:10 Jesus straightened up and asked her, “Woman, where are they? Has no one condemned you?”

8:11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Jn 8:11 “No one, sir,” she said. “Then neither do I condemn you,” Jesus declared. “Go now and leave your life of sin.”

예수님은 똑같은 죄인에 대해서 바리새인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 대해서 우리도 예수님 같은 반응을 보이시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신앙생활은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서 성령님과 말씀에 인도함을 받아 반응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예배, 기도, 선교, 봉사 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주님의 뜻, 주님의 말씀에 따라 반응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만나면 나의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힘든 사람을 만나면 위로하고 도울 길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을 만나면 마실 것을 대접해 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누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울면 같이 옆에서 울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적인 반응입니다.

누가 오른 뺨을 때리면 욕하고, 흥분하고, 고발하는 것은 불신앙적인 반응입니다.

누가 오 리를 가달라고 하면 십 리를 가주는 것은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 고백적인 삶을 살았던 구약의 대표자가 욥입니다.

구약의 욥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동방의 거부였던 욥이 순식간에 양과 약대와 소와 암나귀 등 10,000여 마리를 몽땅 잃고 거지가 됐습니다. 욥의 집에서 일하는 수많은 종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더욱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아들, 10남매가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어찌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욥이 무슨 큰 잘못을 했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비극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끔찍한 소식을 당한 욥은 반응은 너무 놀랍습니다.

이 끔찍한 소식을 접한 욥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침묵했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이런 비극을 당하고 침착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당하고 절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욥의 신앙이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신앙이기 때문에 외면하고 그냥 덮고 넘어가야 하는가? 그냥 성경속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덮어 두어야 하는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너에게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어려움을 당할 때,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 기대한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욥이 잘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항상 욥과 같이 반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은 일상에서 욥과 같은 반응을 보이면 하나님이 잘 했다 칭찬하실 줄로 믿습니다.

욥과 같은 반응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힘든 것도 아닙니다.

인간적이지는 않지만 선명하게 신앙적인 반응, 신앙적인 태도임에는 분명합니다.

1. 받아들임

1:14 일꾼 하나가 욥에게 달려와서, 다급하게 말하였다. "우리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나귀들은 그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Jb 1:14 a messenger came to Job and said, “The oxen were plowing and the donkeys were grazing nearby,

1:15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가축들을 빼앗아 가고, 종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Jb 1:15 and the Sabeans attacked and made off with them. They put the servants to the sword, and I am the only one who has escaped to tell you!”

어느날 욥의 아들 딸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일꾼 한 사람이 욥에게 와서 다급한 소식을 전합니다.

소를 몰아서 밭을 갈고, 나귀들이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난데없이 스바 사람들이 나타나 가축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종들을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깜짝 놀랄 일입니다. 가족같은 종들이 죽고, 소중한 가축들이 죽었습니다.

소가 1천마리, 나귀가 5백 마리나 되는데 한날 한시에 스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보통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왜 이런 비극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나?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주시나? 원망이나 불평 아니면 하소연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욥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15절과 16절 사이, 16절과 17절 사이, 17절과 18절 사이에 크나큰 상실과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는데 욥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우리는 욥은 통해서 신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함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오늘 나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잃어버린 것 같고, 실패한 것 같고,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신다. 최후의 승리를 이루게 하신다. 전화위복으로 만드신다.

불합리하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 뒤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선하게 일하고 계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해 못해도 결국에는 잘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나에게 일어난 상황에 감정이나 나의 이성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나병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환대하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에 몸을 7번 씻으라고만 합니다. 자신을 무시했다고 화가 난 나아만이 아람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때 나아만의 부하가 이보다 더한 요구를 했어도 순종했을 텐데 요단강에 7번 씻으라는 순종은 왜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 이야기 합니다.

신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어린아이같이 피부가 회복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은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나의 모든 죄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로 다 해결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서 이루어 놓은 십자가 희생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 구원을 받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정말 창피한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밝은 대낮에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하자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을 했을까요?

5:5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Lk 5:5 Simon answered, “Master, we’ve worked hard all night and haven’t caught anything. But because you say so, I will let down the nets.”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어린시절부터 거의 30년 동안 고기를 잡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릴리 바다와 그 안에 사는 고기의 생태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어느 시간에 고기를 잡아야 하는지? 어느 장소에 그물을 내려야 하는지? 아마 갈릴리에 사는 어떤 어부보다 명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수출신의 예수님 말씀은 어부들에게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입니다. 밝은 대낮에 그물을 내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깊은 바다에 그물을 내리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설명을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말씀에 의지해서, 말씀 따라서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처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 바로 신앙입니다.

 

나의 경험, 나의 지식, 나의 습관, 나의 감정을 내려놓고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반응이 바로 신앙입니다.

2.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1:21 이렇게 말하였다.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Jb 1:21 and said: “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and naked I will depart.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욥은 인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빈 손으로 태어났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빈 손으로 태어났는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모, 형제, 이웃도 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만 알아도 부질없이 욕심을 부리거나, 불평하고 원망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욥은 동방의 으뜸가는 부자였지만 이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인정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축복이 무엇입니까?

아들이 일곱, 딸이 셋, 양이 칠천, 낙타가 3, 소가 1, 암나귀가 5백 그리고 종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그리고 건강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욥이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축복은 눈에 보이는 자녀,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받은 최고는 바로 믿음입니다.

1:1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Jb 1:1 In the land of Uz there lived a man whose name was Job. This man was blameless and upright; he feared God and shunned evil.

욥이 받은 축복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욥이 얻는 자식들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욥이 가진 건강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그리고 욥의 신앙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욥의 노력으로, 욥의 능력으로, 욥의 고생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욥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맞지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가진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집, 자동차, 건강, 자녀들, 사업, 시간, 다 누가 주신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욥처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다 주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 것이라고 하는 반응은 불신앙이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주님 것이라고 반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무엇을 드리거나 이웃과 나눌 때 내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님 것을 주님의 뜻에 따라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믿음으로 사는 삶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후 5:7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2Co 5:7 For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성도가 보이는 대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삶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내 감정, 내 기분, 내 뜻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감정이 상합니다. 내 뜻대로 해 주지 않을 때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A life of faith is confessing that everything I have is given by God, to not live according to what we see.

 

When I believe what I have is mine, I judge and choose according to my feelings, thoughts and will, but if you believe that it’s not mine, but Gods, you seek the Lord’s will.

If everything I have doesn’t go my way, I get hurt. You feel disappointed or distraught when expectations are not met.

심지어 목사도 내 목사라고 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한대로 하지 않으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불신앙적인 태도로 인생을 살아왔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배운 대로, 내가 경험한 대로, 내가 옳다고 하는 대로 모든 것이 되어야 정상이라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면 당황스러움을 넘어 분노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불평을 하면서 살아왔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선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인과응보입니다. 즉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뒤따르고, 악한 일에는 악한 결과가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야 된다고 배우고, 경험하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욥을 보십시오.

1:1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Jb 1:1 In the land of Uz there lived a man whose name was Job. This man was blameless and upright; he feared God and shunned evil.

정말 복을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욥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을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일 일입니다.

욥이 동방의 부자로 사는 것에 불만을 갖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당한 시련, 욥에게 당한 가혹한 형벌에 대해서 아무도 이해 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욥의 주변 사람들은 욥이 당하는 가혹한 시련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욥은 자신에게 갑자기 불어 닥친 가혹한 시련 앞에서 침묵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스바 사람들이 가축을 빼앗고 죽였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 떼와 목동들을 다 죽였지만, 갈대아 사람들이 낙타를 빼앗아 가고 종들을 죽였지만, 갑자기 광야에서 강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10자식이 한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그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욥이 잃어버린 것은 원래 욥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이 가져가셨다는 신앙적인 반응을 한 것입니다.

욥의 신앙적인 반응은 우리를 당황시킵니다. 우리는 그렇게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A라는 나에게 사과를 하나 주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 마음이 변해서 아까 주었던 그 사과 내 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지요?

아니 무슨 사람이 이래?, 정신 나간 것 아니야? 줄 때는 언제고 왜 다시 달라고 해. 나와 장난하느냐고 멱살을 잡을 수도 있고, 돌려주지 않겠다고 떼를 쓸 수도 있습니다.

원래 이 사과가 누구것이였지요. 나에게 사과를 준 주인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돌려 달라고 해도 우리는 기분이 나쁘고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B라는 사람이 자신의 사과 농사가 잘 되었다고 사과를 나누어 주는데 나에게는 2개를 주고 내 친구에게 4개를 주면 우리는 2개를 공짜로 받으면서도 똑같이 주지 않았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뚤어지고 잘못된 사고방식과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대로 살면 인생이 얼마나 비뚤어지고 형편이 없을까요?

 

올바르게 인생을 살려면 신앙적인 반응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의 감정, 나의 경험, 나의 이성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신앙적인 반응을 할 때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3. 예배드림

1:20 이 때에 욥은 일어나 슬퍼하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면서,

Jb 1:20 At this, Job got up and tore his robe and shaved his head. Then he fell to the ground in worship

가진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자녀를 한날 한시에 다 잃어버린 다음에 욥이 한 것이 경배입니다.

예배입니다.

욥의 심정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지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은 숫자를 뜻하는 말이고, ‘은 길이를 재는 단위로 1장은 10자에 해당합니다. 10억자나 되는 성이 무너지는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극심한 절망과 슬픔에 빠지는 비통한 마음을 표현할 때 억장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지금 욥의 심정이 억장이 무너지는 비통한 심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욥과 같은 상황을 만나면 정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슬픔, 비통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어 실성을 하고 넋을 잃고 자리에 누울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비통한 상황에 대한 보편적인 반응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은 불평, 원망, 미움, 절망, 낙심입니다.

그런데 욥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1:22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Jb 1:22 In all this, Job did not sin by charging God with wrongdoing.

그런데 욥은 그런 비통한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원망하는 말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갑자기 불행이 찾아오면 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실까?,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럴 수는 없습니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길래 이런 가혹한 형벌을 주십니까?’ 항의하고, 원망하지 않습니까?

욥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실수가 없으시다는 것을 입술로만 고백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대로 믿고 반응했습니다.

욥은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서도 믿음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믿음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인간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때로 원치 않는 일이 내 삶에 일어나도 실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찬양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욥의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님을 욕하고 혀 깨물고 죽어야 할 상황에서 나의 모든 행복, 나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신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의 고백에서 중요한 교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혹한 시련을 당할 때 인간은 쉽게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미워하거나, 의심하거나, 심지어 저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견딜 수 없는 가혹한 시련을 만날 때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사람이 가혹한 시련을 당할 때 감정대로 행동하고, 감정대로 말하고, 감정대로 반응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욥은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서도 넘어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예배로 반응했습니다.

예배 드리고 싶지 않은 상황에 우리는 자주 직면합니다. 부부 싸움을 심하게 하면 솔직히 예배 드리고 싶지 않지요. 사업에 실패를 하거나, 누구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특별히 목회자에게 실망을 하면 예배를 드리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그 보다 1억배나 심각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절망하고 낙심할 상황에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반응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좋은 상황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예배 드림으로 반응하는 것이 참된 신앙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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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05월 31일 변질되지 않는 믿음을 가지라. 대하15장16-16장6 김기섭 2020.05.31 54
387 05월 24일 생각을 바꾸면 불행이 은혜가 된다. 왕하5장9-15 김기섭 2020.05.24 61
386 05월 17일 벼랑 끝에서 체험하는 넉넉함의 축복 왕상17장8-16 김기섭 2020.05.17 55
385 05월 10일 비방을 당할 때 최선의 반응 삼하16장5-13 김기섭 2020.05.11 50
384 05월 03일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며 사는 삶 삼하9장1-8 김기섭 2020.05.03 52
383 04월 26일 당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라 삼상18장6-16 김기섭 2020.04.26 80
382 04월 19일 불행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은혜 룻1장19-22 김기섭 2020.04.19 61
381 04월 12일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고전15장12-19 김기섭 2020.04.12 69
380 04월 05일 핍박하는 사울을 만나 주시는 예수님 행9장1-9 김기섭 2020.04.05 69
379 03월 29일 쓸모있는 종이 되라. 마25장14-21 김기섭 2020.03.30 79
378 03월 22일 먼저 네 들보를 빼라. 마7장1-5 김기섭 2020.03.22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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