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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5일 주님께 쓰임 받기 마211-10

 

먼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이것은 의식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이 성령께서 이 시간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이 성령님을 의지해 저는 말씀을 전하고 여러분은 말씀을 듣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일하시면 말씀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11년 전에 제 조카가 결혼해서 뉴욕 맨하튼에 살았습니다. 그때 조카가 뉴욕으로 오라고 해서 뉴욕을 방문했을 때 조카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나 보여 주었습니다. 라이언 킹이라고 하는 뮤지컬 입니다. 입장료가 아주 비쌉니다. 그 당시 돈으로 128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공연마다 표가 매진된다고 합니다. 그 뮤지컬이 한편으로 보면 참 웃깁니다. 사람들이 동물 분장을 하고 동물 세계를 보여 줍니다. 어린이 만화 영화 같습니다. 그런데 동물 세계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동물이 되어서 사람의 권력 세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주 감동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저도 오늘 설교에서 동물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 보려고 합니다.

 

바로 성경 본문에 나오는 새끼 나귀의 입장에서 주님의 진리를 잠깐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새끼 나귀가 되어 봅시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일어난 상황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돌아가실 것을 알고 상징적으로 자기가 누구인지 보여 주기 위해 마련한 행사입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 스가랴서에 나오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왕이시라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서 입니다. 본문 5절은 구약 성경 스가랴 99절에서 예언된 내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9:9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Zch 9:9 Rejoice greatly, Daughter Zion! Shout, Daughter Jerusalem! See, your king comes to you, righteous and victorious, lowly and riding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

 

이 예언의 말씀을 기초로 해서 주님은 당신이 왕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주님께서 나귀 새끼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지시를 합니다. 건너편 마을에 가면 아직 아무도 타본 적이 없는 묶여 있는 나귀 새끼가 있을 터인데 그 새끼를 풀어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누가 무슨 말하면 주가 쓰시겠다.’ 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실제 똑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 복음 19장에서는 나귀 주인이 왜 푸느냐고 물어 보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무튼 이렇게 나귀를 가져와서 그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내용이 본문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이 나귀를 통해 주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기 원합니다.

 

1. 묶인 것을 풀어 사용하신다.

21: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가서 보면,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고, 그 곁에 새끼가 있을 것이다. 풀어서, 나에게로 끌고 오너라.

Mt 21:2 saying to them, “Go to the village ahead of you, and at once you will find a donkey tied there, with her colt by her. Untie them and bring them to me.

 

먼저 본문을 보면 주님은 이 나귀 새끼를 쓰시기 위해 묶인 것을 풀어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묶인 것을 풀어 쓰시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바꾸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주님께 쓰임을 받을 때 묶인 것에서 해방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비한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누군가 우리를 쓰겠다고 고용하면 우리는 매이게 됩니다. 우리가 직업으로 하는 대부분의 일이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시간에 매이게 됩니다. 그래서 일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주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속하고 부자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도 이렇게 부담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주님의 일은 오히려 우리가 묶여 있는 것을 풀어 주는 역할을 하는 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자유하게 하는 면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돈이 많아서 돈에 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돈이 없어서 돈에 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돈에 매인 사람들이 오히려 주님의 일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면서 물질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기 재산을 내 놓겠다고 했습니다.

 

19: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Lk 19:8 But Zacchaeus stood up and said to the Lord, “Look, Lord! Here and now I give half of my possessions to the poor, and if I have cheated anybody out of anything, I will pay back four times the amount.”

 

이 사람은 이렇게 함으로 사실 돈으로부터 놓인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 이 사람은 돈에 매인 삶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아느냐 그는 직업이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자기 민족을 착취해야만 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돈에 매이지 않고서는 이런 직업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기 재산을 내 놓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비로소 돈으로부터 해방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돈이 너무 없어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주님의 일에 돈을 쓰면서 오히려 돈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비록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오히려 돈으로부터 많이 해방됨을 느낍니다. 조그만 교회 목회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 구제하고 선교하려고 하니까 물질로부터 여유로움을 경험했습니다. 이게 신기합니다.

 

목회를 하다가 경험하게 된 것이 경제적으로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헌금 생활을 잘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읍니다. 실제 선배 목사님들이 이런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있는 사람들보다 없는 사람들이 헌금한다. 왜 그런가? 믿음이 좋으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사실 불편하고 부자유합니다. 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못가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런데도 가난한 데 어떻게 헌금을 하느냐?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물질을 사용함으로 돈으로부터 오히려 자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이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록 돈이 많이 없어도 돈에 매여 있지 않게 되니까 주님 기뻐하시는 일에 계속 헌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없어 시간에 매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쁜 가운데 주님의 일을 하다가 시간으로부터 자유케 됩니다. 목자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목원들 심방하고 돌보려면 시간 필요하지요 그래서 시간적으로 많은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바쁜 사람 목자 시켜라 는 말이 있습니다. 이유는 바쁜 사람 목자로 세우면 바빠서 못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더 잘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바쁘다는 말은 부지런히 살아간다는 증거니까 부지런한 사람이 일 잘하다는 말도 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간에 쫓기면 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 가운데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시간적으로 더 여유가 생기고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목자들 중에 목자 하기 전에는 늘 시간에 쫓겼는데 오히려 목자하고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는 분들의 간증이 있습니다. 이게 신기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의 일을 하다가 질병으로부터 놓임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L.A에 있는 동양 선교교회라고 하는 교회의 집사님 이야기 입니다. 좀 오래 전 이야기 인데 이 분은 암 진단 받고 이제 오래 못살겠구나 하고 마지막으로 교회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주방에서 열심히 봉사했는데 시간이 지나가는 데 몸이 안 나빠지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오히려 암이 나았다는 간증을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대전에 한 여성도가 교회 청소 열심히 하다가 고질병인 허리 통증으로부터 치유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일을 통해 질병에 묶인 자들이 풀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몸이 불편한 가운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또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다가 세상 염려로부터 벗어나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우울증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심으로 우리를 묶고 있는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 마치 이 새끼 나귀를 사용하시기 위해 풀어 주시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은 우리를 억압하는 짐이 아니라 우리를 해방해 주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지면 좀 환경적으로 어려워도 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해 주심으로 묶인 것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경험하고 간증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주님께 쓰임 받아 주님의 일을 하면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21:8 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Mt 21:8 A very large crowd spread their cloaks on the road, while others cut branches from the trees and spread them on the road.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두 가지 중의 하나의 이유 때문에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 좋은 결과를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가가 있기 때문에 일합니다. 예를 들면 밭에 열심히 나가서 농사를 지으면 그 일한 결과로 먹거리를 얻게 됩니다. 가게에서 일하는 이유 돈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니까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대가가 없이 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가가 없어도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면 또 열심히 일을 합니다.

 

저희 집을 헤비타트(HABITAT)를 통해 집을 지었습니다. 헤비타트는 자원 봉사자들이 집 없는 자들 집을 지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같이 참여했기 때문에 집을 짓는 자원 봉사자들을 많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한 것에 대가는 없습니다. 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원해서 집을 짓는 데 나와서 일을 합니다.

 

사실 집짓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 입니다) 그런데도 나와서 열심히 합니다. 대가가 없는 데 왜 하느냐?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통해 집 없는 사람들이 집을 갖게 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보람도 없고 아무런 대가도 없다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보람도 없는 일을 우리보고 해라고 한다면 그 일이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도 이런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무런 대가도 없고 보람도 없는 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님의 일에는 대가도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나귀 새끼는 사람들이 환호하고 옷을 깔아 주는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환호하고 옷을 깔아 준 것은 주님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깔아 놓은 옷을 나귀가 밟고 갑니다. 사실 주님께 돌리는 영광을 이 어린 나귀도 함께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주님께 쓰임 받으면 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되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상으로 면류관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면류관은 왕이 쓰는 것임으로 왕이신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써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당신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면류관이란 명예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단순히 머리에 쓰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머리에 쓰는 관이라면 머리에 뭘 쓰길 싫어하는 사람은 그걸 원하겠습니까? 결국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은 당신의 영광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영광을 우리도 누리도록 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이유는 당신의 영광을 함께 누리기 위함 입니다. 사실 오늘 나귀는 최고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누린 것입니다. 이 세상 나귀 중에 이런 특권과 영광을 누린 나귀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사용해주셨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영광이었습니다.

 

이사야 43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7 나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백성,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Is 43:7 everyone who is called by my name, whom I created for my glory, whom I formed and made.”

 

장로교의 중요한 교리서(Catechism) 중의 하나인 West minister 소교리 문답서( Shorter Catechism) 첫 부분에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 납득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놓고 나에게 영광을 돌려라 고 하다니 하나님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했다는 말을 이렇게만 이해하면 오해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창조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우리를 자녀 삼았다는 말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로서 우리는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주님의 소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영광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을 일반적으로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당신의 영광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당신의 일에 참여 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게 될 때 그 분의 영광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용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누리기 원한다면 주님께 쓰임 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이 새끼 나귀가 주님의 환호를 덩달아 받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에게 쓰임 받을 때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용하심으로 우리를 묶어 놓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케 하고 당신의 영광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주님께 쓰임 받음으로 이런 것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일은 수동태이다.

21:7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어다가, 그 위에 겉옷을 얹으니, 예수께서 올라타셨다.

Mt 21:7 They brought the donkey and the colt and placed their cloaks on them for Jesus to sit on.

 

이 나귀는 주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나귀 입장에서는 그냥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사실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우리가 쓰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한다고만 생각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어떤 때는 주님이 사용하지 않은 데 내가 그냥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결국 문제가 됩니다. 저도 가끔 실수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목회도 설교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 문제가 있느냐? 자기 공로 내세우게 됩니다. 성도님들이 설교 은혜 받았다고 하면 우쭐하고 그리고 설교 잘해서 은혜 받았다는 말 듣고 싶어 더 설교를 준비하고 그래서 스트레스 받고 합니다. 그러나 그냥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뿐이다 생각하면 아주 자유롭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다는 자세로 하면 불성실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더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해서는 자유롭습니다. 목자들 그냥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쓰임 받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해 자유로워야 합니다. 주님이 쓰시는 만큼만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반드시 문제 생깁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20년 이상 교회들을 본 결과 교회는 개척 멤버에 의해 세워지고 개척 멤버에 의해 무너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교회 개척 멤버들 보니가 말은 주님의 은혜로 교회를 세웠다고 하면서 실제는 다 자기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마치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합니다. 개척한 목사님 은퇴할 때 자기 권리 주장해서 교회 어려움 겪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았다고 하면 퇴직금을 요구하고 그럴 수 없습니다. 또 개척 멤버 자기 권리 주장해서 큰 소리 치기 때문에 새로 온 교우들에게 상처 줍니다. 주님께 쓰임 받아 주님의 교회를 세운 것이라 생각하면 이렇게 못합니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실수가 주님의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주님께 쓰임 받는 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그래서 결과가 안 좋습니다.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Lk 17:10 So you also, when you have done everything you were told to do, should say, ‘We are unworthy servants; we have only done our duty.’”

 

주님의 일은 주님께 쓰임 받아 하는 것 이라면 주님의 일을 할 때 주님의 인도를 받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다가 주님이 주시는 감동을 느끼고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게 하시구나 느끼고 깨닫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또 기도하면서 묻고 확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주님 이게 진짜 주님이 기뻐하십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하고 싶어도 주님이 원하시는 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을 처음에는 수동적으로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슨 말이냐 내가 막 나서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다른 누군가가 해라고 권해서 하는 것입니다. 시켜서 하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쓰임 받을 뿐이다 생각하면 내가 내려놓아야 할 때 쉽게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내려놓는 것이지요. 우리 한인 교회들에게 가정 교회 운동을 일으킨 최영기 목사님께서 종종 비젼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주님의 일은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인데 자기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비전을 품고 하는 것이 영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최목사님의 간증이 자기가 결과적으로 사역의 큰 열매를 맺었는데 자기가 무슨 비전을 품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주님의 필요에 반응하며 사역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쓰임 받는 자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니까 헌신하고 그 결과 주님이 나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이렇게 수동태로 (passive) 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의 쓰임을 받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음을 새끼 나귀를 통해 역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순결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다른 사람이 한번도 타보지 않는 나귀 세끼를 주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아무런 사람이 타본 적 없는 새끼 나귀입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이 나귀의 깨끗함, 순결함을 나타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새끼를 사용한 것을 통해 우리의 능력보다 우리의 순수함, 깨끗함을 원하는 주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능력있는 사람보다 먼저 깨끗한 사람을 사용하기 원합니다. 이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 220-21절 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딤후 2:20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2Tm 2:20 In a large house there are articles not only of gold and silver, but also of wood and clay; some are for special purposes and some for common use.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성별된 귀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2Tm 2:21 Those who cleanse themselves from the latter will be instruments for special purposes, 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d to do any good work.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지만 결국은 깨끗해야 쓰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교회에 집사님 한 분은 교회 일에 나름대로 열심인데 삶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속인 것입니다. 동네 소문이 안 좋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은 교회일 열심히 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자기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주님이 그 분을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것입니다. 그 분은 교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일 뿐입니다. 결코 주님이 그 사람을 사용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과 주님이 사용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사용하시는 기준은 깨끗함입니다. 그러면 우리 능력에 맞게 재능에 맞게 사용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살아가면 많은 헌금을 못해도 여러분이 드린 헌금을 정말 귀하게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 드린 대로 주님의 일은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 사용해 주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새끼 나귀도 주님께서 사용해 주셨기 때문에 주님을 태우고 가는 영광을 누린 것입니다. 주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그러니 평소 우리 삶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정직함, 순수함을 잘 지킬 수 있기 바랍니다. 간사하게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지 맙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 세끼 나귀를 사용하듯이 우리 또한 합당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새끼 나귀는 주님을 태우고 가는 데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냥 다 자란 나귀 같으면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힘을 다 바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새끼 나귀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사람이 안탔다는 말을 그 만큼 이 나귀는 어리다는 뜻이요 그 만큼 약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나귀는 자기 힘을 다 써야 예수님을 태우고 갈 수 있습니다. 즉 자기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참 중요한 진리입니다. 힘이 좋고 건장한 나귀는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끼 나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 힘을 다해 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힘을 다해 정성으로 모셔야 하는 분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새끼 나귀와 같은 자세로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데 힘을 다하지 않습니다. 너무 가볍게 예수님을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무성의 하게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말만 주님이라고 이야기 하지 전혀 주님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아쉬울 때 이용하는 종과 같이 대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예수 영접 할 때 예수님을 구원자로만 영접할 것이 아니라 주인님으로도 모셔야 합니다. 자기 기분대로 주님을 대하고 자기 기분대로 신앙 생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과 주님은 함께 일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힘을 다해 섬기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 여러분은 여러분을 얽어매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 할 것입니다.

 

이 새끼 나귀와 같이 주님을 모시고 가는 특권을 우리 모두가 누렸으면 합니다. 그래서 참된 해방도 맛보고 주님의 영광을 함께 경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 앞에 늘 순수함을 지켜나가고 정성으로 주님을 섬기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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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 07월 11일 소명으로 삶을 살아라 렘1장4-10 김기섭 2021.07.11 27
445 07월 04일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 사66장1-4   김기섭 2021.07.04 24
444 06월 27일 주의 영이 임하면 사61장1-6 김기섭 2021.06.27 28
443 06월 20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사58장1-12 김기섭 2021.06.20 15
442 06월 13일 고쳐 주마 약속하신 하나님 사57장14-19 김기섭 2021.06.13 26
441 06월 06일 주일성수에 임하는 주님의 은혜 사56장1-8 김기섭 2021.06.07 25
440 05월 30일 좋은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사55장1-9 김기섭 2021.05.30 38
439 05월 23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사54장1-10 김기섭 2021.05.23 37
438 05월 16일 새 일을 하고 계신 하나님 사43장14-21 김기섭 2021.05.16 33
437 05월 09일 너는 나의 것이다. 사43장1-7 김기섭 2021.05.09 33
436 05월 02일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는 종 사42장1-9 김기섭 2021.05.02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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