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219일 아기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세가지 축복 눅28-14

 

오늘은 2021년 아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축하하는 성탄절입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성탄의 기쁨과 축복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시는지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Jn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하나님이 천벌을 받아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위해서 독생자 아기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바로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아기 예수님을 보내 주셨을 때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멀리서 이상한 별을 보고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율법 교사들은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알면서 예비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하여준 구세주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베들레헴에 가서 말구유에 놓여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기 예수님을 찬미했습니다.

우리도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처럼, 천사들이 전해 준 아기 예수님의 탄생소식들을 듣고 하던 일을 멈추고 베들레헴을 찾은 목자들처럼, 그리고 구세주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천사가 전해 준 믿을 수 없는 말씀에 순종한 요셉과 마리아처럼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시길 축원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기사는 4복음서 가운데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하늘이 별을 연구하는 동방의 박사들을 통해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알렸고, 누가복음에서는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을 통해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은 곳은 모두 문물이 발달하고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아닙니다. 또한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도 정치, 종교, 사회적으로 우러르고 따르는 명망이 있는 지도자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을 전할 것도 세상의 중심지인 대도시도 아니고 누구나 존경하는 명망있는 사람들도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명의 이름없는 나와 여러분을 통해서도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Lk 2: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I bring you good news that will cause great joy for all the people.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Lk 2:11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the Messiah, the Lord.

 

우리는 여기서 아주 소중한 교훈을 하나 깨닫습니다.

들에서 양떼를 치던 목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린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하고 있을 때 천사들이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구나 알아주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이 인도하신 곳에서,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사용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서 주시길 원하시는 축복이 무엇일까요?

 

1. 구원의 축복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Lk 2:11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the Messiah, the Lord.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구주라는 단어는 영어로 Savior입니다. 즉 구세주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1: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Mt 1:21 She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give him the name Jesus, because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누구나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었던 원죄가 있습니다. 이 원죄 때문에 인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치않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 질병 ,미움, 불평, 원망, 불순종, 욕심, 시기, 질투, 비방, 거짓, 교만과 같은 것들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죄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죽음 이후에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게 됩니다.

 

9: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Heb 9:27 Just as people are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ment,

 

인간은 누구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상관이 없이 지옥형벌의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이 영원한 지옥형벌에서 구원해줄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위하여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인간에게 지워진 죄의 짐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누구나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용서와 은총을 받지 못하며 아버지께 오지 못한다.”

 

죄를 지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아갔던 세리처럼 감히 두려워 얼굴조차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죄사함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성도의 원죄는 다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의 짐이 늘 우리를 짓누르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사함받게 하십니다.

크고 작은 죄와 허물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 죄의 짐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자비하심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임마누엘의 축복

1: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Mt 1:23 “The virgin will conceive and give birth to a son, and they will call him Immanuel”* (which means “God with us”). / *Isaiah 7:14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에게 괴상한 소문이 들립니다. 자신의 약혼자인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소문입니다. 요셉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약혼자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아무도 모르게 파혼을 하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은 성령님이 하신 일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을 텐세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해라 왜냐하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742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14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Is 7:14 Therefore the Lord himself will give you a sign: The virgin will conceive and give birth to a son, and will call him Immanuel.

 

이때 하신 예언의 말씀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요셉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 장군 집에 머물게 됩니다. 보디발 장군은 요셉을 통해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게 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 가족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임마누엘 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범사에 형통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10명의 형제들과 함께 할 때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일가친척 아무도 없는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늘 요셉과 함께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함께 해 주시면 사업을 해도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갑자기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도착하고 2일 후에 격리면제가 해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여행을 통해 형통의 복을 주셨습니다. 한국에 있는 2주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정말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하는 일이 형통할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형통의 복이 따르게 됩니다.

스캇펙 박사(Scott Peck, M.D.)가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led)에서 말했듯이 삶은 고해다.”우리는 모두 고통스러운 인생의 길을 갑니다.

삶이란 우리가 예기치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들을 해결할 만큼 지혜롭지도 못하고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길을 가면서 어느 누구도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가운데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축 복을 믿으시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3. 평화의 축복

2:14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Lk 2: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heaven, and on earth peace to those on whom his favor rests.”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 인류가 누리는 축복은 바다를 먹물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세 번째 축복은 바로 평화의 축복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평화의 축복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2: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Eph 2:16 and in one body to reconcile both of them to God through the cross, by which he put to death their hostility.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시고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1:21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Col 1:21 Once you were alienated from God and were enemies in your minds because of your evil behavior.

 

우리는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평안하기를 바라고, 행복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유를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지지 못했거나, 건강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재물이나, 외모나, 권세가 없을 때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맨 밑바닥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 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식구들과 관계가 불편할 때 얼마나 신앙생활하는 것이 힘들었습니까? 교회 오고 싶은 마음도 없고,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행복하지 못하지 않앗나요?

하물며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 못하다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가 욕심, 미움, 불평, 교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이 되어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누구도 깨트릴 수 없는 평화가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 이웃과 평화입니다.

2:13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Eph 2:13 But now in Christ Jesus you who once were far away have been brought near by the blood of Christ.

 

인간의 죄는 하나님과만 원수가 된 것이 아니라 이웃과도 불화하게 됩니다.

인간의 욕심, 시기, 질투는 늘 형제, 자매의 화목을 깨게 됩니다. 비록 피를 나눈 형제지만 부모님의 상속 때문에 법정 다툼을 하고 피를 흘리게 싸우는 뉴스를 봅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함께 살아갈 때 어쩔 수 없이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사람은 내가 받은 상처만 기억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을 때 내가 알지 못하는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시는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요.

 

형제를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돌아오니까 형제들이 서로 싸웠던 것 같습니다. 힘이 약한 동생이 아버지가 집에 오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형이 힘없는 자신을 때렸다는 것입니다. 형은 동생이 먼저 자신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 형제를 불러 놓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아빠는 누가 잘못했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 화해를 했느냐를 알고 싶단다.”

우리들도 이 형제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내 이웃이, 내 형제가 자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관심을 집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가 먼저 잘못을 했는지? 누가 더 큰 잘못을 했는지?보다 누가 먼저 화해를 청했는지 그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셨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사이의 막힌 담도 허무셨습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형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18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Rm 12:18 If it is possible, as far as it depends on you, live at peace with everyone.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보내주신 모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하늘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12:19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Rm 12:19 Do not take revenge, my dear friends, but leave room for God’s wrath, for it is written: “It is mine to avenge; I will repay,” says the Lord.

 

복수하고 싶을 만큼 억울하고 큰 상처를 받았을 때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반드시 인간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악마를 벌하려면 내가 악마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악마를 축복하는 천가가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성도가 되게 해 주시려고 아기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또한 용서를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살아갈 때 가정생활도, 목장생활도, 사회생활도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 함께 살아가다보면 감정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과도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녀들과도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어떤 피해도 당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내려놓으시기바랍니다.

우리는 다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또 어쩔 수 없니 피해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오늘 그렇게 다정하고 친했던 사람과 내일 다시 만나고 싶지 않는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이 되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는 세상에 없는 평화를 주고 평화의 사람(Peacemaker)가 될 수 있습니다.

 

2021년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구원의 축복, 임마누엘의 축복 그리고 평화의 축복을 누리시는 가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 같이 성 프란치스코 평화의 기도(Prayer of St. Francis of Assisi - Make Me A Channel of Your Peace)를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평화의 기도(Make Me A Channel of Your Peace)

주여,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여,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기를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기를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