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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일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렘3915-18

 

아주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이 하셨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어떤 집사님이 밤에 산길을 가다가 그만 삐끗해서 낭떠러지로 떨어졌습니다. 한참 떨어지다가 운 좋게 나뭇가지 하나를 손으로 붙잡을 수 있어서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답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집사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이 위험에서 구원해 주세요.” 집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뭇가지를 믿느냐? 아니면 나를 더 믿느냐?” 하나님의 질문을 받은 집사님은 , 하나님을 더 믿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네가 잡고 있는 그 나뭇가지의 손을 놓아라.” 집사님은 너무 당황해서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왜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하나님도 믿지만 저는 지금 이 나뭇가지도 믿습니다.”

 

이렇게 밤새도록 하나님과 실랑이를 하다가 날이 밝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발이 불과 땅에서 30cm정도 위에 떠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아도 금방 발이 땅에 닫을 위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밤새 생고생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생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진 집사님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의 능력을 더 믿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낭떨어지에 떨어진 집사님처럼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나뭇가지를 더 의지하면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어떤 희생을 치루어도, 어떤 댓가를 치루고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입니다. 댓가를 치루지 않겠다고 할 때, 손해보지 않으려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날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Gn 12:1 The Lord had said to Abram, “Go from your country, your people and your father’s household to the land I will show you.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Gn 12:2 “I will make you into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you; I will make your name great, and you will be a blessing.

 

아브라함이 생각할 때 너무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가지고 있는 이성과 본능에 맞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아브라함이 붙들고 살았던 상식은 무엇입니까? “네가 본토, 친척, 아버지를 떠나면 개고생을 하거나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상식, 이성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상식, 경험,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말씀합니다.

 

12:4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Gn 12:4 So Abram went, as the Lord had told him; and Lot went with him. Abram was seventy-five years old when he set out from Harran.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은 너무 흐뭇하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해 하셨을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2022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올 한해를 사시길 축원합니다.

 

믿음에는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 따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다면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따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님을 따르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2:26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Jms 2:26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가요?

아니 지금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의 모습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에 상응하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성도는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성도들입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하셨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외동 딸이 죽어서 살리려고 가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 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서로 밀치고 부딪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깃을 스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난데없이 누가 내 옷에 옷을 대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때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서 고백합니다. 자신은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시는 순간 내 손이 예수님 옷깃만 만져도 나의 병이 고쳐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예수님 옷깃을 만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22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어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가 나았다.

Mt 9:22 Jesus turned and saw her. “Take heart, daughter,” he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And the woman was healed at that moment.

 

12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참된 믿음에는 행함이 따르고 행함이 있는 믿음에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022년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사시면 정말 많은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다.

39:8 바빌로니아 군인들은 왕궁과 민가에 불을 지르고, 예루살렘의 성벽들도 허물어 버렸다.

Jr 39:8 The Babylonians set fire to the royal palace and the houses of the people and broke down the walls of Jerusalem.

 

예레미야 선지자는 8살에 유다 왕이 된 요시야가 13년 되던 B.C. 617년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고 유다의 멸망한 586년까지 40년 동안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고문과 협박 그리고 온갖 수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안에 살고 있었던 왕도, 귀족들도, 종교지도자들도 아무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예레미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911월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예루살렘이 함락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된 예언의 말씀대로 유다가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안에 있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일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있고, 종교 지도자들이 있고,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백성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 성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 도성을 함락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40년 동안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서 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언제나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Mt 5:18 For truly I tell you, until heaven and earth disappear, not the smallest letter, not the least stroke of a pen, will by any means disappear from the Law until everything is accomplished.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은 무려 40년이 지나서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40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 말씀하셨을까요?

모두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하나님의 심판이 연기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벧후 3:9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2Pt 3:9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Instead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시드기야 왕과 군인들은 바빌로니아 군대가 쳐들어 오자 도망하다가 붙잡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시드기야 왕 눈앞에서 아들들을 처형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 바벨로니아로 끌고 갔습니다. 유다의 귀족들도 처형을 당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라에 대한 심판도 개인에 대한 심판도 모두 성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말씀에 대한 올바른 반응

38:17 그러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말하였다. "주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임금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바빌로니아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여야 한다. 그러면 너는 너의 목숨을 구하고, 이 도성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와 너의 집안이 모두 살아 남게 될 것이다.

Jr 38:17 Then Jeremiah said to Zedekiah, “This is what the Lord God Almighty, the God of Israel, says: ‘If you surrender to the officers of the king of Babylon, your life will be spared and this city will not be burned down; you and your family will live.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시드기야 왕에게 전했습니다. “바빌로니아 왕에게 항복해야 목숨을 구하고 예루살렘 도성이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는 순종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시드기야처럼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3가지로 반응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결단하지 않음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결단하지 않고 미루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믿었지만 결단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여호야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불태우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불길하고, 저주스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늘 우유부단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결단하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빌로니아에 항복하면 이미 바빌로니아에 투항한 유다인들에게 자신을 넘겨서 자신이 학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자식들이 자신의 눈에서 죽고 자신은 두 눈이 뽑혀서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시드기야는 자식들이 죽임을 당할 때, 자신의 두 눈이 뽑힐 때, 쇠사들에 묶여서 바빌로니아로 끌려갈 때 뼈에 사무치는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왜 내가 진작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던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기를 미루시는 분이 계신다면 결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미루는 습관을 버리시고 즉시 순종하시는 가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내일 결단해야지, 내일 예수님을 믿어야지, 내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자꾸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무관심

39:9 그런 다음에,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아직도 성 안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투항한 사람과 그 밖에 남은 백성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갔다.

Jr 39:9 Nebuzaradan commander of the imperial guard carried into exile to Babylon the people who remained in the city, along with those who had gone over to him, and the rest of the people.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왕궁을 불태우고 예루살렘 성벽도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성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투항한 사람들 그리고 남은 백성들을 모두 바빌로니아로 잡아 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옳은 그른 것인지 진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에게 유익한가 아니면 손해를 보는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실현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현대인들의 관심은 돈, 권력, 인기, 향락 뿐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구촌에 하나님의 말씀에 상관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는 실수를 하지 마시길 축원합니다.

 

셋째, 흔들지 않은 믿음

39:14 근위대 뜰에서 예레미야를 데려다가,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에게 맡겨서, 그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백성과 함께 살 수가 있었다.

Jr 39:14 sent and had Jeremiah taken out of the courtyard of the guard. They turned him over to Gedaliah son of Ahikam, the son of Shaphan, to take him back to his home. So he remained among his own people.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시위대 뜰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어떤 모욕을 당하든지, 어떤 불이익을 당하든지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 왕에게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생각할 때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빌로니아를 위해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근위대장에세 예레미야를 감옥에서 풀어주고 예레미야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라고 명령을 합니다.

 

예레미야는 거의 40년 동안 하나님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무관심하고 불순종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면서 울부짖을 때 예레미야는 유다에서 백성들과 평안히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40년 동안 인기 없는 메시지를 증거 하며 외롭고 어려운 길을 걸어갔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면 때로 무시와 조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 우리를 높여 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39:18 오히려 내가 너를 반드시 구해서, 네가 칼에 죽지 않게 하겠다. 네가 나를 의지하였기 때문에, 내가 너의 생명을 너에게 상으로 준다. 나 주의 말이다.'"

Jr 39:18 I will save you; you will not fall by the sword but will escape with your life, because you trust in me, declares the Lord.’”

 

에벳멜렉은 에티오피아 사람입니다. 그는 흑인이고, 노예이고, 시드기야 왕의 환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신하게 의지하였습니다. 그가 세상적인 아무런 의망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대신들이 예레미야를 근위대 뜰에 있는 웅덩이에 빠트렸을 때 에벳멜렉이 죽음을 무릅쓰고 왕에게 가서 예레미야를 구명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우물에 빠져 죽음을 기다리던 예레미야 선지자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세상적으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에벳멜렉을 구하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3917-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벳멜렉을 구원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에벳멜렉이 심판의 날에 죽지 않고 살아서 구원받으리라고 다섯 번씩이나 확인하고 강조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왜 이 보잘 것 없는 에벳멜렉에게 이런 특별한 구원의 메지지를 주셨을까요?

그가 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예레미야 선지자를 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에벳멜렉이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에벳멜렉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도 에벳멜렉과 똑같이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권세가 많은 왕도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는 예레미야처럼 선지자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에벳멜렉과 맺은 구원을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을 목숨도 살리고, 생명을 연장하시고, 죽지 않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간 생명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왕 히스기야는 죽을병이 걸렸습니다. 하나님도 히스기야에게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셨지만 히스기야가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습니다.

 

히말라야 고산족들이 양을 사고 팔 때에는 양의 무게, 양의 생김새를 보지 않고 양을 가파른 비탈에 두고 파는 자와 사는 자가 지켜봅니다. 양이 비탈 위로 올라가면 비싸고 아래로 내려가면 싸다고 합니다. 올라가는 양은 산 중턱에 이르지만 내려가는 양은 협곡에서 굶어 죽게 됩니다. 아래도 내려가면 편하고 쉽고 쉽고 살 것 같지만 오히려 죽음이 기다립니다. 올라가면 잠시 힘들지만 사는 길입니다. 믿음의 원리가 이와 같습니다. 우선 쉬운 길을 종래 죽는 길이고 우선 어려운 길은 사는 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원수의 손에 팔려가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죽지 않고 노략물같이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때로 믿음으로 사는 길이 좁고, 험하지만 그대로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에벳멜렉에게 구원의 약속을 지키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지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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