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03일 올무에서 벗어나는 예수님의 지혜 마22장15-22
우리는 마21장에서 예수님께서 강도의 소굴처럼 되어 버린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를 하셨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이 일을 환영하고, 지지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자신들의 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회개하시면 그 마음에 하늘 나라가 임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면서 회개할 수 있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성령님께서 말씀과 기도로를 통해 회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려고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두 아들 비유, 포도원과 소작인 비유, 그리고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비유의 핵심 내용은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네,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두 아들 비유에서 큰 아들은 아버지께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는데 못하겠다고 했다가 회개하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포도원과 소작인 비유에서 소작인들이 포도원 주인이 보낸 종들, 아들들을 죽였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에서도 왕의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이 왕의 초대장을 가지고 간 하인들을 모욕하고 죽였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늘 나라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졌다고 할지라도 회개한 사람들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 비유를 통해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회개하기를 바라셨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통해서 우리가 인생의 길을 가면서 자신의 죄, 자신의 허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은 우리가족들은 하늘 복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오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하나가 되어서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을 통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려는 간악한 술수에서 지혜로운 답변으로 오히려 그들을 탄복시킨 예수님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바리새파 사람들이 자기네 제자들을 헤롯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내면서 시작이 됩니다.
헤롯당과 바리새파는 평소에는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헤롯당은 유대인이지만 로마가 유대를 정복하고 파견한 이두매 출신의 헤롯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소위 정통율법을 중요하게 여기고 로마를 반대하는 유대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에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일상에서는 서로 대립하고 원수처럼 여기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에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이 한패가 되어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
만약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대답하면 유대인으로서 이방 나라에 세금을 내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대답을 하면 로마에 반역하는 것이 됩니다.
이 난처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올무에 빠지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로마 황제에게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한 데나리온을 들고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이 동전에 새겨진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당당하게 ‘황제의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을 탄복시키는 명쾌한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려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빠져 나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질문에 마치 사냥꾼의 올무에서 갇힌 새가 벗어나는 것 같이 벗어났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생각할 때 예수님을 완벽하게 함정에 빠트릴 답이 없는 질문을 했는데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하늘의 지혜로 올무에서 벗어났습니다.
본문은 지혜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말씀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너무 소중하고 필요합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꼭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지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칭찬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지혜.
마 22:16 그런 다음에, 그들은 자기네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Mt 22:16 They sent their disciples to him along with the Herodians. “Teacher,” they said, “we know that you are a man of integrity and that you teach the way of God in accordance with the truth. You aren’t swayed by others, because you pay no attention to who they are.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먼저 예수님 칭찬을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목적은 예수님을 칭찬하고 무엇인가 배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려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대적하게 만드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웃는 얼굴로 예수님을 칭찬한 것입니다.
사기꾼들이 사기를 칠 때 사기를 칠 사람들에게 무례하거나, 험악한 얼굴을 하지 않습니다. 늘 친절하고 그것도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천사의 얼굴로 찾아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헬롯 당원들도 천사의 미소를 하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칭찬을 합니다.
자신의 목적, 즉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음모가 성공을 이루려면 먼저 예수님을 칭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유없이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후회하는 일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칭찬은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아른 다운 선물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는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칭찬의 목적은 상대방에게 좋은 동기부여를 줄 수 있습니다.
칭찬의 효과를 가장 잘 표현한 말 중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칭찬은 칭찬
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능력 이상의 일을 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부모의 칭찬을 받는 자녀,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학생, 상사의 칭찬을 받는 회사원은 평상시 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칭찬은 좋은 부모가 되고, 좋은 지도자가 되는 리더의 덕목이 됩니다.
저도 자랄 때 부모님에게 칭찬을 별로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아들과 딸들에게 칭찬을 별로 많이 해 주지 못했습니다. 참 많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칭찬을 하기 보다는 ‘게임을 조금만 하고 운동을 해라. 공부를 해라.’ 이런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무슨 대화에 나가서 상을 타오거나, 회사에서 승진을 하거나 하면 뭐라고 이야기를 하나요?
보통은 ‘응 우리 아들 잘 했네, 잘 했어’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김창옥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잘 했어’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말은 개 훈련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하네요. ‘잘 했어’는 칭찬이 아니라 평가를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아들, 나도 이렇게 좋은데 너는 정말 좋겠다.’ ‘와 대박이야. 끝내준다. 최고다 최고’
그런데 예수 믿는 성도들은 칭찬에 인색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남편 집사님이 회사에서 승진을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여보, 오늘 나 승진했어.’
그럼 부인 집사님이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응, 다 내 덕분인지 알지? 내 말대로 하니까 되잖아”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그런데 여보, 너무 자만하지 마. 교만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셔 알지. 그러니까 우쭐대지 말고 겸손하라고.”
부인 집사님의 말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입니다. 얼마나 성령 충만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승진하고 어깨가 잔뜩 올라가서 집에 온 남편 집사님은 기운이 빠지고 삶에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칭찬을 할 때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말투입니다.
영혼없는 목소리로 ‘응 잘했네, 잘 했어. 수고했네.’ 이런 말투는 오히려 상대방의 의욕이나 기분을 다운 시킵니다.
그러나 칭찬에는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칭찬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노력하게 하는 긍정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칭찬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거나, 너무 자만하게 만드는 함정에 빠지게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주는 것을 분명히 올바른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공의 책임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회인을 만들어내는 꼴이 됩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와서 수업중에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수업을 게을리 하면 선생님이 휴대폰을 빼앗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하면 선생님에게 대들고 욕을 하거나 주먹질까지 한다고 합니다.
칭찬이 고래도 춤을 추게 하는 좋은 교육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사회적인 책임과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일에는 엄하게 훈육을 해야 합니다.
평상시에 서로 원수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에는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칭찬 하듯이 말을 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구구절절이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예수님을 정말 칭찬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칭찬에는 아첨이나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음모가 숨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말에는 간혹 무서운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들의 칭찬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칭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점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갈 1: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Gl 1:10 Am I now trying to win the approval of human beings, or of God? Or am I trying to please people? If I were still trying to please people, I would not be a servant of Christ.
2. 간계를 파악하는 지혜
마 22:18 예수께서 그들의 간악한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Mt 22:18 But Jesus, knowing their evil intent, said, “You hypocrites, why are you trying to trap me?
본문 17절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의 생각을 묻습니다.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니면 옳지 않은 일이냐?
예수님은 이 질문이 올바른 답을 구하기 위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간악한 생각이라는 것을 간파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서 유대 사회에서 몰아내거나 아니면 나쁜 소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심어주려는 간악한 간계가 들어 있습니다.
‘간계’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부리는 나쁜 꾀(A wicked scheme or plot designed to advance one's interests)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들(바리새판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의 질문이 자신을 시험하려는 악한 생각에서 나온 것을 파악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선한 생각을 하는 선한 사람들입니다. 또 악한 생각을 하는 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선한 생각만 하거나 항상 악한 생각만 할 수 없습니다. 악한 생각에서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때로 누군가에게 선한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희대의 살인마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 20여명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해한 살인자입니다.
그런데 프로파일러(Profiler), 범죄 행동 분석관인 권일용교수가 유영철을 면담했는데 부녀자 20여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마였는데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애정은 끔찍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는 선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협박이나 아니면 절박한 환경에 처하면 악한 생각으로 악한 말, 악한 행동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선한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 악한 영에 의해서 악한 생각을 하기도합니다.
때문에 상대방의 악한 생각을 잘 간파하지 못하면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서운하고 섭섭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롬 12: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Rm 12:2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 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마음을 새롭게 해서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때만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생각을 먼저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 비밀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 8: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Rm 8:5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have their minds set on what the flesh desires; but those who live in accordance with the Spirit have their minds set on what the Spirit desires.
롬 8:6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Rm 8:6 The mind governed by the flesh is death, but the mind governed by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하나님이 주신 영, 성령을 따라 갈 때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영은 늘 육신에 속한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영은 생명과 평화를 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을 바꾸려고 애를 써도 늘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께서 새로운 생각을 주시면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축복을 누릴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간파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간파하는 것은 가늠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때로 내가 낳은 자녀의 생각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부모님의 생각을 헤아리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판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의 악한 생각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혜안(慧眼 ‘슬기로울 혜(慧)’자에 ‘눈 안(眼)’자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예수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교회의 영적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약 1:5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Jms 1:5 If any of you lacks wisdom, you should ask God, who gives generously to all without finding fault, and it will be given to you.
다른 사람의 말, 행동, 마음, 일을 헤아리는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하늘의 지혜로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시고, 때로 피할 길로 알려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세상에 없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때가 악하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말씀과 성령으로 깨어 있어야 악한 마귀의 간계를 간파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벧전 5: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1Pt 5:8 Be alert and of sober mind. Your enem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
3. 위선자를 탄복시키는 예수님의 지혜
마 22: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Mt 22:20 and he asked them, “Whose image is this? And whose inscription?”
마 22:21 그들이 대답하였다. "황제의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Mt 22:21 “Caesar’s,” they replied. Then he said to them, “So give back to Caesar what is Caesar’s, and to God what is God’s.”
성전 정화 사건으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어떻게 하지 못한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말로 함정에 빠뜨려서 예수님을 유대 사회에서 매장시킬 완벽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이 시험에서 예수님이 빠져 나올 수 없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서로 원수처럼 여기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한 패거리가 되어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자신들의 음모가 100% 성공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많은 사람들이 사전모의를 했을까요?
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께 접근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방법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칭찬하는 여유로 부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비록 함정을 빠뜨리려고 왔지만 예수님의 지혜에 그만 탄복하고 말았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세금으로 바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힘이 없어서 나라를 로마에 빼앗겼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니면 옳지 않은 일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황제에게 바치는 돈을 보여 달라고 하니까 데나리온 한 닢을 예수님께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동전을 들고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옳은 일이냐 아니면 옳지 않은 일이냐고 묻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마 22: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Mt 22:20 and he asked them, “Whose image is this? And whose inscription?”
당시 데나리온 동전은 은화로서 앞면에는 신적 권위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쓴 당시 황제인 디베리우스의 화상과 “황제 디베리우스, 신적인 아우구스도의 아들”이란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대사제와 더불어 옥좌에 앉아 있는 황제의 어머니 상이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가지고 온 데나리온을 보면서 그들을 향하여 “이 은전에 새겨진 화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황제의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천지가 진동하실 만큼 놀라운 지혜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려라.”
이 말씀의 강조점은 황제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가 아니라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사람이든, 바치지 않는 사람이든지 모두 하나님을 향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섬겨야 한다는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람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지만 세상의 통치를 따르라고 강요를 합니다. 분명히 성도다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통치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비록 이 세상에 살아도 전혀 다른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거룩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이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늘의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려라.
요일일서 말씀을 읽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요일 2:15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1Jn 2:15 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love for the Father* is not in them.
요일 2: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1Jn 2:16 For everything in the world - the lust of the flesh, the lust of the eyes, and the pride of life - comes not from the Father but from the world.
요일 2:17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1Jn 2:17 The world and its desires pass away, but whoever does the will of God lives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