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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일 침례 요한의 죽음 마141-12

 

우리는 매일 매일 이 세상을 떠나는 무수한 사람들 틈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사연들은 다양합니다. 80-90살까지 자기 수명을 다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불의의 사고, 천재지변, 불치병에 걸려서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구구팔팔일이삼이라고 기도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만 아프고 삼일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런 은총을 우리 가족들에게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지혜를 가진 솔로몬 왕이 쓴 전도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Ec 7:2 It is better to go to a house of mourning than to go to a house of feasting, for death is the destiny of everyone; the living should take this to heart.

 

보통 사람들은 초상집에 가는 것보다 잔칫집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솔로몬은 잔칫집에 가는 것 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권면을 하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죽음 앞에 서면 자신도 망자처럼 결국은 죽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죽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시편 90편에 이런 교훈을 합니다.

 

90:12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주십시오.

Ps 90:12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려 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헤아려 보는 사람은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삼십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침례 요한의 사건을 통해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11: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Mt 11:11 Truly I tell you, 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has not risen anyone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yet whoever is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than he.

 

이 세상에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낳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침례요한이 가장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키가 크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큰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침례 요한은 오래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부여 받은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3:3 이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Mt 3:3 This is he who was spoken of through the prophet Isaiah: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wilderness,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요한은 사명에 따라 요단강에서 회개의 침례를 베풀면서 나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은 흥하고 자신은 쇠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던 침례 요한의 마지막 죽음은 그야말로 초라하고 비참했습니다.

요한의 죽음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침례 요한의 죽음을 보면서 과연 이렇게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의 죽음은 시편에 있는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가 되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116:15 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주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신다.

Ps 116:15 Precious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faithful servants.

 

침례 요한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침례 요한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신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잘 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성도의 죽음은 장수하고, 많은 축복을 받고, 평안하고, 은혜롭고, 아무런 고통도 없어야 된다고 대부분 생각을 합니다. 그런 성도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선한 일

14:4 그것은, 요한이 헤롯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Mt 14:4 for John had been saying to him: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her.”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받아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토요새벽예배 때 에베소서 강해를 통해서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성도로 만드셨다고 말씀합니다.

침례 요한이 만약 헤롯의 불의한 일을 보고 침묵했다면 침례 요한은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허망하게 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헤롯 안티파스가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은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은 문제 삼거나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 안티파스의 권세가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침례요한도 이 점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헤롯 안티파스의 잘못을 책망했습니다.

침례 요한과 헤롯 안티파스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의 가족도 아닙니다. 헤롯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침례 요한이 침묵한다고 할지라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해서 자신의 할 바를 다 했습니다. 자신이 의로워 보이기 위함도 아닙니다. 자신이 선지자임을 알리기 위함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위함도 아닙니다. 침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 한 것 뿐입니다.

선한 일은 인자를 사랑하고, 공의를 실천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약 침례 요한이 헤롯의 잘못을 책망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했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실의에 빠지고, 삶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라는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벧전 3:17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1Pt 3:17 For it is better, if it is God’s will, to suffer for doing good than for doing evil.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일상을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일을 하시는 가족들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2. 남용

14:6 그런데 마침,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서, 헤롯을 즐겁게 해주었다.

Mt 14:6 On Herod’s birthday the daughter of Herodias danced for the guests and pleased Herod so much

14:7 그리하여 헤롯은 그 소녀에게,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맹세로써 약속하였다.

Mt 14:7 that he promised with an oath to give her whatever she asked.

 

침례 요한의 죽음을 살펴보면 억울한 죽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고 최고 권력자인 헤롯 안티파스가 이복 동생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인 일에 대해서 여러 차례 잘못과 부당함을 고발했습니다.

물론 헤롯 안티파스가 침례 요한의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은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보낸 사도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편지합니다.

 

살전 2:2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였으나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1Th 2:2 We had previously suffered and been treated outrageously in Philippi, as you know, but with the help of our God we dared to tell you his gospel in the face of strong opposition.

살전 2:3 우리의 권면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1Th 2:3 For the appeal we make does not spring from error or impure motives, nor are we trying to trick you.

살전 2:4 우리는 하나님께 검정을 받아서, 맡은 그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1Th 2:4 On the contrary, we speak as those approved by God to be entrusted with the gospel. We are not trying to please people but God, who tests our hearts.

 

침례 요한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눈치도 보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기쁘게 해 드리려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본문을 잘 살펴 면 침례 요한의 죽음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는데 침례 요한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의 죽음에는 자신들의 권력, 재주, 관계를 악용하고 남용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첫째, 권력의 남용입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생일을 맞이 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고관 대작들이 참석하고 아버지의 생일을 위해서 헤로디아의 딸이 많은 청중 앞에서 멋진 춤을 추어서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해 드렸습니다.

너무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헤롯 안티파스가 딸의 춤에 매료되어서 해서는 안 될 맹세를 하게 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원하는 것,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헤로디아의 딸에서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맹세를 한 것입니다.

통치자에게 권력을 준 것은 일차적으로 그 나라의 국민입니다. 그리고 원초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헤롯 안티파스는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남용, 오용, 악용한 것입니다.

국민이 부여한 막대한 권력으로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라고 했는데 오히려 그 막강한 권력으로 국민의 생명을 빼앗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었을 때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둘째, 재주의 남용

헤로디아의 딸은 타고난 춤 실력이 있었든지 아니면 무용을 열심히 연마해서 탁월한 춤 실력을 갖추었든지 타인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딸은 그 빼어난 재주로 많은 사람들이 선지자로 여기는 침례 요한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헤롯의 생일과 침례 요한의 목숨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헤로디아 딸의 춤과 침례 요한의 목숨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잘 추어서 자기 아버지에게 기쁨을 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었다면 그에 맞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주를 가지고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이 세상에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남보다 더 뛰어난 재주가 있다면 그것은 그 뛰어난 재주로 다른 사람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정의롭다면 그것은 사명입니다. 그 정의로움으로 다른 사람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주, 재능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축복하라는 사명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다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축복하는 삶을 사시길 축원 드립니다.

 

셋째, 관계의 남용

14:8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말하였다. "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로 가져다 주십시오."

Mt 14:8 Prompted by her mother, she said, “Give me here on a platte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인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생일에 멋진 춤을 춘 헤로디아 딸에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주겠다는 맹세를 하였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가서 아버지에게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악행을 고발하고, 책망하는 침례 요한이 미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딸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준다고 했는데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딸에게 침례 요한의 머리를 쟁판에 가져다 달라고 요청합니다.

요새말로 하면 딸 찬스(Daughter Chance.)’를 쓴 것입니다.

한국에서 자꾸 등장하는 아빠 찬스(Dad Chance)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빠가 법대 교수인데 지인 등을 통해서 좋은 로펌(Law Firm)에 인턴쉽(internship)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빠가 중앙 선거관리 위원회원 고위직에 있는데 지방 선거 관리 사무실에 직원을 채용할 때 채용 심사관들에게 자신의 자녀들을 채용하도록 회유와 협박을 한 것입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을 악용해서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지적하는 침례 요한을 제거한 것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잘 주어서 상을 받는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딸이 원하는 것을 받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헤로디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의 딸이 받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 관계를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부분은 없는지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잘못된 선택에는 고통이 따른다.

14:9 왕은 마음이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를 하였고, 또 손님들이 보고 있는 앞이므로, 그렇게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Mt 14:9 The king was distressed, but because of his oaths and his dinner guests, he ordered that her request be granted

 

헤롯 안티파스는 헤로디아의 딸이 침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일날 많은 고관 대작들과 흥에 취해 있을 때 헤로디아의 딸이 너무 멋진 춤사위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헤로디아의 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맹세를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헤로리다의 딸이 침례 요한의 머리를 원한다고 말할 때, 그때서야 자신이 한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실수를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아니 돌이킬 수 있었지만 자신의 권위와 명예 때문에 자신이 한 맹세를 거두어 드릴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책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한 잘못을 바로 잡을 만큼 용기도, 책임감도 없었던 것입니다 .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바로 잡을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침례 요한의 머리를 쟁판에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시인하고 미안하다.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침례 요한은 선지자이다. 그의 목숨을 내가 취할 수 없다. 나는 그럴 권한이 없다. 다른 것으로 보상해 주마라고 답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헤롯 안티파스는 단지 괴로워만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침례 요한보다, 침례 요한의 가족보다 자신의 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침례 요한이었다면 어떠할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올바른 답을 찾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잘못된 선택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붙잡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권력, 물질, 명예를 더 사랑하는 것이 죄악인 줄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몰라서 돌아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자신의 체면, 물질, 쾌락 때문에 돌아서지 못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 할 수 있고,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 잘못된 판단,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실 때 돌아서려면 마땅한 대가를 지불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인정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명예보다, 체면보다, 침례 요한의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타인의 목숨보다 자신의 명예, 권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잘못을 우리는 범하고 있지 않는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선택을 하면 살아갑니다. 그 선택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볍게 내 뱉은 말이 씨앗이 되어서 많은 악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전혀 악한 의도 없이 내 뱉은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슴 찢어지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의 죽음에는 헤롯 안티파스의 의도치 않은 말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못 내 뱉은 말을 다시 주어 담을 용기가 없었습니다.

오늘 침례 요한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침례 요한의 입장에서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내가 헤롯 안티파스가 될 수도 있고, 헤로디아가 될 수도 있고, 헤로디아의 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 재능, 힘을 가지고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언행심사를 바르게 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혹시 잘못 선택, 판단, 결정을 했다면 주님이 깨닫게 해 주실 때 어떤 대가라도 달게 치루고 돌아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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