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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일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신 예수님 마1354-58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대해서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가르치신 후에 고향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도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고 하늘 나라에 대해서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고향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를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처음 친구들이 만들어진 곳입니다. 고향은 부모형제가, 일가친척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고향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것입니다.

타향살이의 고단함이나 지쳐있을 때 찾아가면 따듯하게 맞이해 주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이 고향입니다.

고향은 늘 내 인생의 뿌리와 같은 곳입니다. 나를 낳아 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이 터를 잡고 버티고 있는 곳입니다. 아무 때나 찾아가도 반갑게 맞이해 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록 객지에 나가 살아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차로 15-18시간 걸려서도 고향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고향에서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배척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 가족들에게 배척을 받기도 합니다. 사랑과 믿음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척이나 무시를 당하면 오랫동안 그 상처가 아물지 않게 됩니다.

우리 가족들은 배척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배척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당한 피해만 기억하지 자신이 상대방에게 가한 가해에 대해서 잘 인식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내가 당한 상처만을 생각하지 말고 혹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자신을 성찰해보는 지혜가 있어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고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되자 회당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13:54 예수께서 자기 고향에 가셔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그 놀라운 능력을 얻었을까?

Mt 13:54 Coming to his hometown, he began teaching the people in their synagogue, and they were amazed. “Where did this man get this wisdom and these miraculous powers?” they asked.

 

예수님이 고향에 돌아온 다음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알던 예수가 아니 였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하신 세 가지 때문에 놀랬습니다.

 

첫째는 가르치심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시는 것은 뭔가 특별했습니다. 보통 사람과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셨을 때 예수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알고 있습니다.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니, 무리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Mt 7:28 When Jesus had finished saying these things, the crowds were amazed at his teaching,

7:29 예수께서는 그들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Mt 7:29 because he taught as one who had authority, and not as their teachers of the law.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에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위, 권세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학자들이 가르쳤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스승으로부터 배워서 가지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학문으로 배우고 터득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마치 율법을 만든 분의 권세, 권위, 능력이 느껴진 것입니다. 말씀의 힘(Power)가 남달랐습니다. 영적 권위가 느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실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왜 사람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Jn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능력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능력, 권세가 느껴질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의 권세, 능력이 느껴지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지혜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은 어떤 학교를 다녔고, 어디 문하생이고, 어떤 지식을 배웠는지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놀라운 지혜였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가르시는 그 놀라운 지혜는 어디서 온 것이지? 누구에게 배운 것이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능력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했던 베드로의 장로의 열병을 치료하고,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고,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죽풍에 걸린 백부장의 하인을 고친 일은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한 것인가?

들었지만, 눈으로 보았지만 믿을 수 없었고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이렇게 놀라운 능력, 지혜 그리고 가르침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을 고향 사람들이 배척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같으면 이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고향 사람이고, 친척이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1. 다름

13:54 예수께서 자기 고향에 가셔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그 놀라운 능력을 얻었을까?

Mt 13:54 Coming to his hometown, he began teaching the people in their synagogue, and they were amazed. “Where did this man get this wisdom and these miraculous powers?” they asked.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을 때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놀람이었습니다.

가족 여러분, 사람들은 언제 놀랍니까?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놀랍니다. 일반적이지 않을 것을 보면 놀랍니다. 기대 한 것보다 더 큰 능력을 행하거나, 지혜를 말하면 놀라게 되지요. 나보다 더 큰일, 더 큰 능력을 보이면 놀라게 됩니다.

상대방이 나와 똑같지 않을 때 사람들은 놀랍니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우리는 놀라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습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할 때 놀라게 됩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놀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동류의 사람이 나보다 뛰어나거나 돋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썩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을 찾아 끼리 끼리 모이게 됩니다.

 

때로 다름은 불편함으로 느껴 질 수 있습니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은데,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나는 혼자 집에서 있고 싶은데, 친구가 찾아와서 쇼핑을 가자고 조르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나는 피자를 먹고 싶은데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해놓으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성격, 취향,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불편함을 느낍니다.

 

안드로이드 폰에 익숙한 사람은 아이폰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건이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어야 편한데 같이 사는 사람이 물건을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늘여 놓으면 불면합니다.

그런데 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편한 대로만 하면 친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자신들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수용하고 받아들였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까요?

 

13:58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지 않음 때문에, 거기서는 기적을 많이 행하지 않으셨다.

Mt 13:58 And he did not do many miracles there because of their lack of faith.

 

예수님께서 고향사람들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고향에는 기적을 많이 행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만약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다면 많은 지혜, 많은 능력을 보고 경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름을 배척하면 다름을 통해서 배우고, 느끼고, 그리고 얻을 수 있는 축복을 받을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됩니다.

 

한 초등학교 1학년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우리 집에 큼지막한 수박 한 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아주머니께 무엇이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다음 빈 칸에 쓰시오.

그리고 빈칸은 모두 다섯 개였습니다. □□□□□

여러분이 생각하고, 선생님이 원했던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감사합니다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다양한 답을 적었습니다.

아줌마최고”, “진짜크네요”, “짱맛있겠다”, “같이먹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답안은 뭘이런걸다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채점을 하였을까요?

학생들의 답이 선생님이 원하는 답은 아니였지만 아이들의 답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만약 이 문제를 채점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면 모두 정답이라고 해 주고 웃는 얼굴을 그려 주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목회를 하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임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나처럼 성령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처럼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성격, 다양한 생각,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는데 그 가운데 우리는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름이 때로 불편하고, 배척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서 배움의 기회로 삼거나 훈련의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지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선입견

13:56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Mt 13:56 Aren’t all his sisters with us? Where then did this man get all these things?”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목수인 요셉의 아들, 그리고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형제들은 요셉, 시몬, 유다 그리고 누이동생들도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사람이 빠져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고,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가 빠졌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동생은 3명이 아니라 4명입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고향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고, 들은 전부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과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요,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귀중한 교훈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락도, 나를 낳아주신 부모라고 할지라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나도 나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모를 수 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의 전부를 알고 있는 분, 나의 부모형제를 온전히 알고 계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알려면, 남편이 아내를 알려면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자식을 알려면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부모를 알려면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실은 우리는 부분적으로 밖에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시는 가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Is what I know all there is to know?

 

저는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속에,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고정관념에 대해서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의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주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우리도 주님을 향해서 굳어진 마음, 선입견을 깨트려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와 우리 가족들도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과 마찬가지고 주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설교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데 우리는 전혀 바라지도 않고,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주님께 열린 마음으로 나와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려야 주님의 깊은 은혜에 도달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가 대하지 않은 모습,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것만 주시고, 좋은 길로만 인도하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굶주린 자로 찾아오시고, 목마른 자로 찾아오시고, 배로 헐벗은 자로 찾아오시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어떤 병이든지 치료하지는 분으로 찾아오실 수도 있으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늘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시고, 동행하시고, 교제하셔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길 축원 드립니다.

 

둘째,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대하는 고향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나도 내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를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전의 모습으로 내 주변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인간관계의 가장 큰 위기는 바로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더 이상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때 찾아옵니다.

 

보통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우정은 다분히 이기적이고 소유적인 사랑일 경우가 많습니다.

소유적인 사랑이란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미명하게 상대방으로 하여금 전혀 다른 생각이나 태도를 갖지 못하도록 강요하거나 조정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강요하는 이런 태도는 상대를 소유하려는 태도입니다. 이는 참 사랑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물건처럼 소유할 수도 없고 소유해서도 안 되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심지어 내가 낳고 양육한 자녀라고 할지라도 내 방식, 내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상대방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고유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고 다른 점을 지지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선입견은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로 잘 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할 때 깨어지게 됩니다.

나의 고정관념이 깨어져야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의 경험, 나의 선입견, 나의 고정관념에 붙들려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고정관념에 붙들려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3:19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Is 43:19 See, I am doing a new thing! Now it springs up; do you not perceive it? I am making a way in the wilderness and streams in the wasteland.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만드는 일을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새로운 일에 통로가 되려면 나의 선입견을 깨트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범했던 선입견의 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새 역사에 동참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3. 불신

13:58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지 않음 때문에, 거기서는 기적을 많이 행하지 않으셨다.

Mt 13:58 And he did not do many miracles there because of their lack of faith.

 

그들의 믿지 않음 때문에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더 많은 능력, 더 많은 기적, 더 많은 지혜를 고향 사람들에게 행하시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고향 사람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을 제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본문과 병행이 구절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6:5 예수께서는 다만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 밖에는, 거기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Mk 6:5 He could not do any miracles there, except lay his hands on a few sick people and heal them.

 

예수님께서 소수의 병자들만 치료를 해 주셨지 더 큰 기적을 보여 주시 못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불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막아 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믿었더라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요?

많은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많은 중풍병자가 걸으며, 문둥병과 암 환자가 치유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매일 나사렛 마을에는 수많은 기적들로 인해서 기뻐하고 매일 잔치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은혜의 문, 축복의 문이 닫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불신앙은 우리의 마음만 닫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까지 닫아 버리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은 우리가 믿음의 마음을 가질 때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충분히 더 많은 지혜, 더 많은 능력을 펼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 마을에서 행하지 않은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지혜를 분명히 보고 들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시고, 더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더 많은 가르침도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예수님과 예수님 전하시는 복음도 믿지 않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기적도, 지혜도 그리고 가르침도 주실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의 기회를 여러 번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그 모든 기회를 다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지혜, 기적,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지만 저와 우리 가족들은 주님이 기회를 주실 때 믿음으로 그 기회를 붙잡으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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