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은 왜 이단인가?(1)
< 여호와의 증인 역사 >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맺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18:6)
1. 창시자 - 럿셀(Russel)의 생애
럿셀은 1825년 2월 16일 펜실바니아주의 알렉레니(Allegheny)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 당시부터 지옥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주 도로변에 나가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지옥불'의 무서움을 글이나 말로서 경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럿셀이 17세 되던 해 지나가던 행인 중에서 '지옥불'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행인과 오랫동안 토론한 끝에 마침내 설득당하여 '지옥이 없다'는 전혀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때에 그같은 결론이 나오게된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결코 지옥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토론 이후로 럿셀은 지옥의 공포에서 해방(?)되었으니이 경험을 나중에 그가 여호와의 증인 이라는 집단을 창시한 이후에 중요한 교리로 채택하기도 했다.
또한 럿셀이 18세 되던 1870년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강론하는 어떤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언제 재림하실 것인지에 대하여 대단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예수님 재림 때를 알기위해 계속 성경을 연구하던중 <주님의 재림목적과 그 방법>(The Object andManner of the Lord's Return) 이란 소책자까지 발행할 정도로 재림문제에 깊이 몰두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무리한 주관적 성경 해석과 복잡한 시간 계산법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의 노력의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가 1874년에 재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후 1914년으로 재림날짜를 다시 변경하였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재림 날짜를 모른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럿셀은 그날을 감히 선포(?) 하더니 1914년이 다 지나가도록 재림은 없었다. 그러자 이제는 재림이 육체적인 재림이 아니라 눈에보이지 않는 영적인 재림이었다고 변명하고 말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가르침과 교리 대부분이 럿셀의 이와같은 편견되고 허황된 견해를 둘러싸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후 1872년 20세 되던 해에 제7일 안식일교회 지도자 'J.H.페이론'의 저서를 읽다가 크게 감명을 받고 그후 여호와의 증인 교리의 기초를 놓는데 영향을 입었다.
그때 그는 조합교회 교인이었고, 웅변과 조직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럿셀의 직업은 미국피츠버그에서 잡화상을 하였다.
럿셀은 1872년에 여호와의 증인을 창설하였고, 1879년에 아크레이(Achley)여사와 결혼하였으며, 1916년 10월 31일 64세의 일기로 그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지옥불속으로 마침내 들어가고야 말았다.
2. 럿셀의 비성경적 행위(부도덕편)
(1) ‘기적의 밀' 계획과 럿셀.
럿셀은 1파운드(453.6g)당 1불씩 받고 밀을 팔았는데 그 밀은 다른 종자보다 5배나 빨리 성장하는 '기적의 밀'(Miracle wheat)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Brooklyn Daily Eagle]지는 럿셀을 조롱하는 만화를 게재하였다.
그러자 럿셀은 명예회손이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고소를 제기하였고, 정부는 이 사실을 조사해 본 결과 그 '기적의 밀'이라는 것이 오히려 보통 종자의 밀보다 좋지 못함이 발견되므로써 신문사측이 승소하게 되었다.
(2) 부인의 이혼소송 사건.
럿셀은 1879년에 아크레이(Ackley)란 여자와 결혼 하였다.
럿셀은 부인을 Tract Society(트렉트 소사이어티)의 재정비서로, 또 파수대의 합동 편집자로 임명하여 일하게 하였는데 그녀는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한 럿셀의 태도에 몹시 실망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1913년에 그녀는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 이혼사유는 자기남편의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며, 지배적인 태도 및 다른 여자들에 대한 부당당한 행위"등을 들고 있다.
(3) 럿셀의 부끄러운 고백.
1912년 6월에 Ontario(온타리오)주 Hamilton(하밀톤)의 한 침례교 목사였던 로쓰(Ross)목사님은 럿셀을 한 책자에서 비난했었다. 그러자 즉시 럿셀은 고소를 제기하였다.
그가 증언대에 섰을 때에 질문을 받았다.
"신약성서의 원어인 헬라어를 아는가?"라는 질문에 "예, 그렇읍니다."라고 하자 "그러면 몇자 읽어 보시오"라고 하므로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럿셀은 자신은 정식으로 임명 받은 목사라고 주장해 왔으나 후에 그런 사실이 없었음을 시인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럿셀의 교훈들을 믿지않고 있다고 말하나 그들이 쓰는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 럿셀의 추종자들(후계자들)
(1) 루터포드(Rutherford) - 제2대 회장.
1916년 럿셀이 죽자 루터포드가 후임이 되었다. 본부를 뉴욕의 Brooklyn(부륵크린)에 두었다. 1918년 5월에 동료 지도자 8명과 함께 '군복무 거절'로 20년형의 선고를 받았으나, 1년만에 여호와 증인들의 탄원으로 모두 석방 되었다.
이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법률 준수를 거절했는데 그 이유는 루터포드가 인간정부가 만들어내는 모두가 마귀의 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2) 크노(Nathan Homer Knorr) - 제3대 회장.
1905년 펜실바니아주 Bethlehem(베들레헴)에서 출생하여 18세 때 여호와의 증인으로 일했고 마침내 최고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공개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으며, 강력한 여호와 증인 훈련계획을 실시하였으며 여러 서적과 특히, 성경을 그들의 교리에 맞게 번역하였는데 '새 세계 번역'이라고 명명 하였다. 그런데 아직도 누가 번역하였는지를 알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