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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일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6(그물) 1347-50

 

예수님은 여러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하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인간이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I have never been there.) 하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씨 뿌리는 비유, 알곡과 가리지, 겨자씨, 숨겨진 보화 그리고 가정의 주부들에게 친숙한 누룩같은 소재들입니다. 그리고 장사꾼들에게 익숙한 값진 진주에 대한 소재로 천국을 비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께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에게 익숙한 그물을 가지고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하늘 나라를 비유해 주시려면 신앙의 중심이 예루살렘 성전이나 종교적인 모임을 하는 회당으로 비유를 해 주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면서 회당이나 유대인들에게 상징과도 같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비유를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그 이유는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 종교 지도자들은 하늘 나라가 어떻게 오는지? 누구를 통해서 오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소재로 하늘 나라를 말씀하신 이유는 비록 하늘 나라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결코 먼 곳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매우 민첩하게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하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인간의 마음이 중요한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17:20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Lk 17:20 Once, on being asked by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Jesus replied,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is not something that can be observed,

17:21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Lk 17:21 nor will people say, ‘Here it is,’ or ‘There i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in your midst.”

 

우리 마음에 하늘 나라를 소유하고 살면 천국같은 삶을 살고 하늘 나라가 없으면 누구나 빈부귀천을 떠나서 지옥같이 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같은 삶을 원하지만 천국을 마음이 아니라 환경에서 찾기 때문에 늘 천국을 누리지 못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4383절을 다 같이 불러 볼까요.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권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예수님은 하늘 나라 비유를 통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첫째, 하늘 나라는 꼭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늘 나라에는 희생이 따른다.

셋째, 성도는 비록 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성도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늘 나라를 보고 살아야 합니까?

하늘 나라를 보고 살아야 소망이 있습니다.

하늘 나라를 보고 살아야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를 보고 살아야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며 방황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생각하는 TV 동화'라는 동화책에 아버지와 아들의 쟁기질이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따스한 봄기운으로 가득한 들판. 아버지가 소를 끌고 밭을 갈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한 밭은 붉은 고랑이 가지런하게 줄을 지었어요. 옆에서 보고 있던 아들이 말했어요.

아버지, 저도 한번 해 볼게요.”

그래라.”

아들은 아버지의 쟁기를 건네받아 소를 몰기 시작했어요.

이랴, 이랴!”

그런데 아들이 쟁기질을 하고 지나간 밭고랑은 삐뚤빼뚤 엉망이었어요.

아들이 아무리 반듯하게 고랑을 파려고 해도 들쭉날쭉한 것이 아버지의 고랑과는 영 딴판이었지요.

아버지, 아무리 똑바로 가려고 해도 잘 안 되네요.”

아들아, 쟁기질을 할 때 무엇을 보았느냐?”

앞에 있는 소 엉덩이를 보았지요.”

후훗! 그러니 들쭉날쭉할 수밖에!”

그러면 아버지는 무엇을 보고 가시는데요?”

나는 저 언덕 위에 있는 미루나무를 보고 간단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소 엉덩이는 기준이 될 수 없지. 그러나 저 멀리에서 가만히 서 있는 미루나무는 언제나 한자리에 있으니 그걸 보고 앞으로 나아가면 반듯한 고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움직이는 소 엉덩이를 따라가면 삐뚤빼뚤해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처럼 늘 환경에 따라, 보는 것에 따라, 듣는 것에 따라 흔들리고 변하는 내 생각을 기준으로 살면, 우리의 삶은 삐뚤빼뚤해 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만 따라가면,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낙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마지막 비유입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는 방법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낚시입니다. 낚시 바늘에 미끼를 끼워서 한 마리씩 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다나 강에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한꺼번에 아주 많이 잡는 방법입니다.

그물에 고기가 잡히면 그물을 배위로 끌어 올려서 원하는 고기는 어창에 담고 나머지는 다시 바다에 버립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가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을 때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지만 나쁜 고기는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물에 잡힌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로 비유한 하늘 나라는 어떤 교훈이 담겨 있을까요?

 

1. 온갖 고기

13:47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Mt 13:47 “Once again,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net that was let down into the lake and caught all kinds of fish.

 

어부가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는 것은 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어부가 그물에서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선별하는 것도 별반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 나라의 비유하라고 할 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관점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물에 잡힌 고기입니다.

그물에 고기들이 잡혀 있는데 온갖종류의 고기가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4: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Mt 4:19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send you out to fish for people.”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잡이 경험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늘 원하던 고기만 잡았던 것이 아닐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을 낚을까요?

, 그물 비유에서와 같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온갖 사람들을 다 낚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차별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 나라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교회는 일반적으로 거룩한 사람, 착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도 분명히 그물 안에 나쁜 고기가 잡힌 것처럼 나쁜 교인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점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딤전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1Tm 2:4 who wants all people to be saved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몸처럼 하나 됨을 이루어가는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이 바로 끼리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교회의 모습이 바로 끼리끼리 모이는 교회일 것입니다.

교회는 끼리끼리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성격도, 문화도, 가치관도 서로 다른 이들이 자신들을 내려놓고 머리 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되는 교회입니다.

 

온갖 고기가 그물에 잡혔다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고기만 그물에 잡히게 하신 것이 아니라 좋은 고기, 나쁜 고기 가리지 않고 그물에 잡히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지만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인들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3: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Rm 3:10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3: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Rm 3:11 there is no one who understands; there is no one who seeks God.

3: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Rm 3:12 All have turned away, they have together become worthless; there is no one who does good, not even one.”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깨달을 수도, 그리고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서 우리를 찾아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찾아진 사람들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마음 밭이 4 가지라고 말씀했습니다.

옥토처럼 복음에 대해서 우호적이고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4명중에 3명은 거절하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예수님을 믿을 것 같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임하고 성도들의 희생과 사랑의 섬김을 통해서 가시밭 같고, 자갈 밭 같고, 돌짝 밭 같은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옥토 밭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을 생각하며 끝까지 복음과 사랑으로 영혼들을 섬기시길 축원 드립니다.

 

2.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찰 때

13:48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Mt 13:48 When it was full, the fishermen pulled it up on the shore. Then they sat down and collected the good fish in baskets, but threw the bad away.

 

어부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 놓고 바로 걷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린 다는 것입니다.

어부가 그물을 바다에 던졌는데 그물 안에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잡혔다고 하였습니다. 이 어부에게는 자기가 잡고 싶은 고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실은 자기가 잡고 싶은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바다에 던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잡기를 원했던 물고기만 잡히지 않고 원치 않는 물고기도 함께 잡힌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원하는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원치 않는 물고기만 잡혔을 수 있습니다.

밀과 가라지비유에서처럼 주인은 밭에 좋은 밀씨를 뿌렸는데 밤에 원수가 와서 주인 몰래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물 비유에서도 그물에 좋은 고기만 잡힌 것이 아니라 나쁜 고기도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교회를 원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교회, 좋은 직장, 좋은 학교를 원합니다. 또 좋은 선생님, 좋은 목회자를 원하기도 합니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은 교회가 되려면 내가 좋은 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마치 좋은 교인이 된 것처럼 자신 같은 사람만 있으면 좋은 교회가 될 것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나 때문이구나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른 교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도 좋은 밀, 좋은 물고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교회에 다니기를 원하시고 또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모두 좋은 밀이 이라고, 좋은 물고기라고 하나님이 인정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술을 끊지 못하고, 담배를 피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버럭 화를 내고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모두 포용하는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문제가 없는 교회도, 문제가 없는 목사도, 문제가 없는 장로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죄와 허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다 알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는 다 성숙한 성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예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미숙한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여전히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이 필요하고 긍휼과 관용이 필요합니다.

토요 새벽 예배 시간에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 됨의 비결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4: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Eph 4:2 Be completely humble and gentle; be patient, bearing with one another in love.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깍듯이 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처럼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실수하고 허물이 보여도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래 참아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집사가 술 마시고 교회 오면 됩니까? 안 됩니까?

, 안 된다고 모두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을 해 볼까요? 집사가 술 마셨다고 주일예배를 빼먹고 집에서 자빠져 누워 있으면 됩니까? 안 됩니까?

, 집사님이 술에 취하면 안 되지요. 그러나 술을 마셨더라고 교회에 나오면 좀 너그럽게 용납을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그 마음에 누가 오십니까? , 성령님이 찾아오시지요. 그러면 성령님을 모신 사람의 마음에는 늘 예수님을 닮고 싶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고, 성숙해 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사랑과 오래 참음으로 용납해 주시길 축원 드립니다.

사람들은 술에 취한 사람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술에 취한 자식이라도 품에 품어 줍니다. 하나님도 어머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실수하고 죄를 범했더라고 주님을 찾아오면 받아 주시고 널리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

 

3.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갈라냄

13:48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Mt 13:48 When it was full, the fishermen pulled it up on the shore. Then they sat down and collected the good fish in baskets, but threw the bad away.

13:49 세상 끝 날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Mt 13:49 This is how it will be at the end of the age. The angels will come and separate the wicked from the righteous

 

이것은 밀과 가라지비유에서 추수 때가 되면 농부가 알곡은 모아 곳간에 넣고 가라지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넣는다는 것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어부도 그물에 걸린 고기 중에 좋은 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선별해서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물고기는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들을 하며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점을 말씀합니다.

 

고후 5:10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2Co 5:10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so that each of us may receive what is due us for the things done while in the body, whether good or bad.

 

비록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선악 간에 우리의 행한 대로 심판을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을 종말 장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종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때가 이르면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서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들을 의인과 악인으로 구별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비한 나라에 들어갈 양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25: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Mt 25:35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something to eat,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something to drink, I was a stranger and you invited me in,

25: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Mt 25:36 I needed clothes and you clothed me, I was sick and you looked after me, I was in prison and you came to visit me.’

 

이 말은 들은 의인들이 우리가 언제 주님이 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헐벗은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병들거나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갔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25: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Mt 25:40 “The King will reply, ‘Truly I tell you, whatever you did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and sisters of mine, you did for me.’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초라하고 지극히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힘이 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이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보살펴 주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봐 주는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으로 보시는지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산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고 아무런 상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이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상을 베푸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점을 분면하게 말씀합니다.

 

9: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Heb 9:27 Just as people are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ment,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혀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가른다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믿음 좋은 권사님께서 뇌출혈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병 고침을 받고 집을 나서는 권사님이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에 집에 못 돌아 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해 주소서. 오늘 하루 주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 이렇게 기도로 마무리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을 의지하며 살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일 또 하루를 주시면 또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매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예수님은 밀과 가라지비유 그리고 그물비유를 통해서 하늘 나라를 바라보는 성도는 종말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경고해 주시고 계십니다.

종말의 때 창고에 모아 들이는 알곡이 되고, 종말의 때 그릇에 담기는 좋은 물고기가 되시는 가족들이 다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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