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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일 왕이 초대하는 아들의 혼인잔치 비유 마221-14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삶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를 완벽하게 아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하면 살아가면서도 정말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도 인간이 가장 모르는 대상이 하나님일 것입니다.

인간이 사물을 알아가는 방법은 눈으로 직접 보는 시각, 귀로 듣는 청각, 코로 냄새를 맡는 후각, 손이나 피부로 만져서 아는 촉각 그리고 혀로 느끼는 미각 등이 있습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눈은 우리 몸 최고의 정보 수집기관이며, 시각은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전세계 80억명의 인구 중에 시각 장애인이 25천만명으로 약 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눈으로 좋은 것을 보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오감을 통해서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연구하면 알 수 있습니까?

종교생활을 하면 알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인간에게 알려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이걸 계시(啓示, revelation)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보여 주신 계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연계시입니다.

1: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Rm 1:19 since what may be known about God is plain to them, because God has made it plain to them.

1: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Rm 1:20 Fo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God’s invisible qualities - 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 - 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from what has been made, so that people are without excuse.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 할 수 없습니다.

 

둘째, 특별계시입니다.

벧전 1:23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1Pt 1:23 For you have been born again, not of perishable seed, but of imperishable, through the living and enduring word of God.

 

하나님께서 인간의 손을 빌려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자신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직접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 없는 귀중한 선물을 해 주셨습니다.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바로 이해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호에 보낸 편지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고전 2:9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1Co 2:9 However, as it is written: “What no eye has seen, what no ear has heard, and what no human mind has conceived” - the things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고전 2: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1Co 2:10 these are the things God has revealed to us by his Spirit.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우리가 그 동안 경험한 것, 지식들이 하나님을 아는데 유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왔다가 충격적이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기도하고, 제사를 드려야 할 예루살렘 성전이 강도의 소굴처럼 변해 버린 것입니다.

성전에서 환전을 하고, 제물을 사고파는 사람들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와 기도하는 곳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성전에서 내 쫓으시고, 환전하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엎으시고, 제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다 엎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것을 보고 분노하거나, 정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 중에도 이 모습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서 이 문제를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바로 잡으신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성전정화를 환영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사건을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회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구제하려는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음모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위선과 가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두 아들 과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 비유는 우리가 눈으로 읽어도 해석과 이해가 매우 난해한 비유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생각이 나게 됩니다.

 

첫째, 왕의 혼인잔치 초대를 거부하고 밭을 갈러 가고, 장사하러 갈 수 있을까?

둘째, 감히 왕이 아들의 혼례 초청장을 가지고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죽일 수 있을까?

셋째, 왕은 군대를 보내서 초대를 거부하고 초청장을 들고 간 종들을 죽인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사른 것이 가능할까?

넷째, 군대를 보내서 왕의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을 죽인 왕이 다시 잔치를 열면 어떤 사람이 잔치에 참여 하려고 할까?

다섯째, 길거리에서 붙잡혀 억지로 왕이 준비한 잔치에 참여 했는데 예복이 없다고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대로 내 던져야 할 일인가?

 

예수님은 이 혼인 잔치 비유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일까요?

많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아주 분명하고, 명확합니다.

 

22:14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Mt 22:14 “For many are invited, but few are chosen.”

 

예수님은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를 통해서 하늘 나라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초대의 응해야 한다.

22:3 임금이 자기 종들을 보내서, 초대받은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게 하였는데,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Mt 22:3 He sent his servants to those who had been invited to the banquet to tell them to come, but they refused to come.

 

예수님은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를 통해서 하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왕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천국 잔치를 만들어 놓으시고 사람을 초청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왕은 결혼 전에 혼인 잔치가 있을 것을 알리고 종을 보내서 혼인 잔치에 초대할 사람들에게 참석 여부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만찬을 준비한 다음에 다시 종을 보내서 잔치에 참여 하라고 요청을 합니다.

왕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초대장을 아무에게나 보내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첫 번째 사람들은 바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입니다.

이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즉 왕이 베푸는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려면 거기에 걸맞은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의 거절 사유가 너무 황당합니다.

한 사람은 밭으로 가고 다른 사람은 장사하러 가기 위해서 왕이 아들의 혼인 잔치 초대를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은 왕에 대한 모욕으로 여겨 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왕의 아들의 혼례라고 할지라도 자기의 부모가 상을 당했다면 거절할 명분이 됩니다.

아니면 갑자기 자녀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해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밭에 일하러 가려고, 혹은 시장에 장사하러 가려고 왕의 아들의 혼례식에 초청을 거부했다는 것은 명백하게 왕에 대한 무시와 모욕으로 받아 들여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왕의 혼인 잔치 초대를 받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왕이 보낸 종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왕이 자신들을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영광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왕을 모욕하고, 왕이 보낸 종들마저 죽이는 파렴치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그들은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대제사장들, 장로들,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모두 거절을 했습니다. 왕의 초대를 거절을 했을 뿐만 아니라 왕이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은 천국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때로는 부모님을 통해서 자녀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또 자녀를 통해서 부모를 초대하기도 합니다. 일가친지나, 회사의 동료,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통해서 초대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말씀의 자리,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초대는 계속 열려 있으며, 우리가 온 마음으로 응답하고 삶의 산만함이 우리를 그분의 식탁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도록 촉구합니다.

 

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Mt 11:12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subjected to violence, and violent people have been raiding it.

 

하나님께서 초대하실 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바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대에 응해서 하늘 복을 받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2. 진노하시는 하나님

22:7 임금은 노해서, 자기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

Mt 22:7 The king was enraged. He sent his army and destroyed those murderers and burned their city.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거절하고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갔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왕이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왕은 더 이상 화를 참지 않으시고 군대를 보내서 왕 초대장을 가지고 간 왕의 종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 마을을 불살라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읽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가?’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은혜로 본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은 그분의 정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초대가 개방적이고 은혜로우면서도, 고의적인 거부와 그분의 은혜에 대한 무례함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보내진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해치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는 충동적이거나 불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끈기 있고 완고한 반항에 대한 절제된 반응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함께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그의 사랑의 초대는 실제적이지만, 겸손과 경건함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책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일 4: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Jn 4:8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맞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인자를 죽이고 그 마음을 불살라 버리실 수 있으실까?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여전히 불의하고,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세상에 죄가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넘치고 있음을 하나님도 아시지만 참고 계십니다.

 

그 이유를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벧후 3:9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2Pt 3:9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Instead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하나님은 아무리 흉악한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하고 용서받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왜 하나님은 끝까지 참지 않으시고 분노하시고, 살인자를 죽이시고 그 마음을 불살랐을까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2:5 그대는 완고하여 회개할 마음이 없으니,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나타날 진노의 날에 자기가 받을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Rm 2:5 But because of your stubbornness and your unrepentant heart, you are storing up wrath against yourself for the day of God’s wrath, when his righteous judgment will be revealed.

 

왕의 초대장을 가지고 온 종들을 모욕하고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찾을 수 없지만 아마도 왕이 군대를 보내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마치 대제사장들, 장로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같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완벽하게 정의롭고 공의롭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공의롭고 정의롭습니다,

 

지금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설교가였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1741, 신명기 32:35을 본문으로 작성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이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 인간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축복을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경고하십니다.

 

3:36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Jn 3:36 Whoever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but whoever rejects the Son will not see life, for God’s wrath remains on them.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은 자신들의 머리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3. 택함을 받는 사람이 되라.

22:14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Mt 22:14 “For many are invited, but few are chosen.”

 

왕은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거절하고, 모욕하자 이번에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초대에 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선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악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세리들과 창녀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무시하고, 멸시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이 있는 누가복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4:21 그 종이 돌아와서, 이것을 그대로 자기 주인에게 일렀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더러 말하기를 '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 하였다.

Lk 14:21 “The servant came back and reported this to his master. Then the owner of the house became angry and ordered his servant, ‘Go out quickly into the streets and alleys of the town and bring in the poor, the crippled, the blind and the lame.’

 

어떤 사람들이 2차로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까?

, 가난한 사람들, 지체장애가 있는 사람들, 앞을 보지 못하고, 다리를 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 부모가 죄를 지어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본인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을 보고 이렇게 예수님께 묻습니다.

 

9:2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Jn 9:2 His disciples asked him, “Rabbi, who sinned,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격없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아들의 혼인 잔치에 자리를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사람들은 그 어떤 자격도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손양원목사님은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두 아들, 손동인, 손동신을 죽인 살인범 안재선을 용서하고 심지어 양자로 삼았습니다.

비록 내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왕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가난한 사람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로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왕이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왕은 종들을 통해서 아들의 혼인 잔치 자리에 예복을 입지 않고 참석한 사람을 결박해서 바깥 어두운 곳에 내 던져버렸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산상 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7: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Mt 7:21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only the on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두 아들 비유에서도 예수님께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을 알아야 그대로 행할 것이 아닙니까?

그럼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6:40 또한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살릴 것이다."

Jn 6:40 For my Father’s will is that everyone who looks to the Son and believes in him shall have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them up at the last day.”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석을 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합당한 예복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리고, 찬양과 경배를 하고, 기도를 드리지만 하나님이 보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드리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 헌금 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시는 가족들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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