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가장 중요한 계명 마22장34-40
우리 교회 가족은 누구나 ‘생명의 삶’ 성경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성경 공부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정답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네,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신구약 모두 합쳐서 66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내용이 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책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수많은 계명이 있고 또 수많은 예언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명과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의 본 뜻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본문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습니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습니다. 그야 말로 예루살렘 성전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실 때 예루살렘 성전은 성전의 모습이 아니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회개의 제사를 올리고, 하나님의 용서와 말씀을 듣는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과 같은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매매하는 사람들, 환전하는 사람들, 제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다 내 쫓아내셨습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성전 정화를 곱지 않은 생각, 시선으로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들, 장로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은 예언자, 선지자로 보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원수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일로 시험을 했습니다. 둘째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부활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 로 시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명기에 있는 말씀으로 명확하게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올바른 의도를 가지라.
마 22:34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가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자리에 모였다.
Mt 22:34 Hearing that Jesus had silenced the Sadducees, the Pharisees got together.
사람들이 나를 찾아 올 때 좋은 의도도 있지만 나쁜 의도를 가지고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살펴보았지만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의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리새파 사람들이 올바르지 않는 의도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첫째, 올바르지 않은 모임의 의도.
바리새파 사람들, 즉 백성들에게 참 좋은 신앙의 모델이라고 칭찬을 받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벌였던 논쟁에서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모의가 고작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함정에 빠트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이유가 고작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지자로 여기는 예수님을 시험하고, 모함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고작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모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수많은 좋은 모임이 생기게 됩니다. 예배, 기도, 봉사, 친교, 찬양을 위해서 모이는 아름다운 모임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님을 믿고 예배당에 나올 때 대부분의 여자 성도님들이 고운 한복을 입고 예배당에 나왔습니다. 집집마다 고운 한복을 입고 성경을 가슴에 안고 예배드리고 가시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다윗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드리러 가는 모습을 보고 시를 지었습니다.
시 133: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Ps 133:1 [A song of ascents. Of David.]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God’s people live together in unity!
그러나 이 세상에는 좋지 않은 이유로 모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 시험하기 위해서, 모략을 꾸미기 위해서 모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잘못된 모임입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작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 모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임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다른 사람을 중상모략하거나, 험담하려고 모이는 모임이 있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거절하시기 바랍니다. 목장모임에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 좋지 않은 교회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당이든지, 목장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언제나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Mt 18:20 For where two or three ga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혼을 구원해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교회의 존재목적에 부합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주 토요새벽예배 때 에베소서 말씀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하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엡 2: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Eph 2:10 For we are God’s handiwork,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메시야를 시험하고, 모함하기 위해서 모였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에 부합하는 모임, 즉 예배, 기도, 찬양, 교제, 섬김, 감사의 모임을 가길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 올바르지 않은 질문의 의도
마 22:35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Mt 22:35 One of them, an expert in the law, tested him with this question: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질문의 의도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 여러 가지 의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자 묻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질문은 여기에 속합니다. 둘째는 자신이 알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답을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기 위해 묻는 질문입니다. 즉 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사용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는 것을 것의 답을 찾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은 전혀 다른 의도의 질문입니다. 즉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골탕 먹이거나, 시험을 하기 위해서 하는 질문입니다.
모든 질문에는 눈에 보이는 즉 의도가 분명한 질문도 있지만 의도가 명확하지 않고 숨은 의도 있는 질문도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정말 궁금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배우기 위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의도는 아주 사악한 의도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 실수, 혹은 잘못을 들추어내려는 의도로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경찰이나 검사가 범죄를 파악하기 위해서 추궁하듯이 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원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율법을 파괴하거나,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보낸 구세주입니다. 우리를 살리러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러 오셨고, 생명을 주러 오셨고, 진리를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을 합니다.
올바른 질문은 올바른 답을 얻는 지름길이 됩니다.
질문이 올바르지 않으면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혹시 올바른 답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바리새파 사람들은 잘못된 의도로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의 숨의 의도를 모르셨을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의도를 아셨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책망하시지 않고 올바른 답을 주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신명의 말씀으로 답변하셨습니다. 첫째, 마음, 목숨, 뜻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정답을 들었지만 그 이후에 어떤 반응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깨달았지만 회개하지도, 결단하지도, 변화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바른 의도로 질문을 할 때 올바른 응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가장 중요한 계명
마 22: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Mt 22:37 Jesus replied: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마 22: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Mt 22: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마 22:39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Mt 22: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예수님께서 올바르지 않은 모임의 의도, 올바르지 않은 질문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족들은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실 수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가 되고, 수긍이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라. 더 나아가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라. 그리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숨이 탁 막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어느 누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도 이 세상에 이런 사랑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왜 성경은, 왜 예수님을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하나님은 이렇게 불가능한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렇게 불가능한 사랑을 하나님께서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충 사랑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 넓이, 높이, 깊이를 헤아리며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기도를 드리고, 감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릴 때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 드렸던 찬송 가운데, 기도 가운데, 감사 가운데, 예배 가운데 그리고 예물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셨길 축원 드립니다.
둘째, 이웃을 사랑하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첫째, 둘째 계명을 나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39절을 보면 ‘둘째 계명도 이와 같은데’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이 다 같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동전의 앞뒤면과 같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 4:20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1Jn 4:20 Whoever claims to love God yet hates a brother or sister is a liar. For whoever does not love their brother and sister, whom they have seen, cannot love God, whom they have not seen.
요일 4: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1Jn 4:21 And he has given us this command: Anyone who loves God must also love their brother and sister.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쟁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누구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 5: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Mt 5:43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Love your neighbor and hate your enemy.’
마 5: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Mt 5:44 But I tell you,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나를 사랑해 주 사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는 선을 행하고, 나를 미워하거나, 서운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아프게 하는 사람은 미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었든지 말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은 사람인지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웃에게 하는 태도, 말,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줍니다.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Rm 12:17 Do not repay anyone evil for evil. Be careful to do what is right in the eyes of everyone.
롬 12:18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Rm 12:18 If it is possible, as far as it depends on you, live at peace with everyone.
3. 율법과 선지자를 주신 이유
마 22:40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Mt 22: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율법과 선지서는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서 하신 말씀의 본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다 지켜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이 삶의 규범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의 최고의 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거룩한 백성임을 율법을 지킴으로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심히 율법을 지켰습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입니까?’물어 보는 바리새파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장로의 유전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비유에서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얼마나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려고 노력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눅 18: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Lk 18:11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 - robbers, evildoers, adulterers - 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Lk 18:12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리새파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의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를 쓴 것이 잘못이 아니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 뜻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시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Mt 5:17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완성하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을 완성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구체적으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실천하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7:12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Mt 7:12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 정신이 바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섬김, 용서, 긍휼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특권, 이웃을 사랑하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사랑하고 싶고, 용서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축복하고 싶어도 못했다면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을 지킴으로 하늘 복을 누리시기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