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 마22장23-33
하나님을 잘 믿었던 한 청년이 불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 빨리 인생의 종착점에 도착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어머님을 위로해 드리려고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어머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귀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머님의 귀한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떠나는 죄를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 제가 떠나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내가 이런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또 내 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어머니, 누군가 내가 천국에 갔느냐고 묻거든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원래 내 아들은 그곳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허무한 인생은 바로 천국을 준비하지 않는 인생,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일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귀영화(富貴榮華), 무병장수(無病長壽)를 한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허무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그 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을 한다.”
“You are in error because you do not know the Scriptures or the power of God”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한 패가 되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수 묘책을 가지고 갔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이 함정에 빠트릴 수 있는 또 다른 모책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에는 여러 분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바리새파, 그리고 에세네파, 셀롯당 그리고 지난 주에 보았던 헤롯당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표적인 두 분파가 바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바리새파는 ‘분리 된 자들’이라고 불려 졌고 세속과 분리하여 거룩함을 추구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킴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길 고대하는 분파였습니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 하나님의 심판과 천사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파는 사독 제사장의 후손들로 기득권층으로 이루어져 대제사장직과 같이 성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열심보다는 정치적인 힘을 가져야 하나님의 나라를 이둘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부활도, 사후 세계도 그리고 천사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이여, 모세는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이웃에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결혼하여 살다가 자식 없이 죽고 그 동생이 형수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도 자식 없이 죽었고 셋째에서 일곱째까지 모두 그렇게 되었으며 끝내는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이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한 여자와 살았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두개인의 이 질문은 모세의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했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신 25:5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에, 그 죽은 사람의 아내는 딴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지 못합니다. 남편의 형제 한 사람이 그 여자에게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Dt 25:5 If brothers are living together and one of them dies without a son, his widow must not marry outside the family. Her husband’s brother shall take her and marry her and fulfill the duty of a brother-in-law to her.
신 25:6 그래서 그 여자가 낳은 첫 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게 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Dt 25:6 The first son she bears shall carry on the name of the dead brother so that his name will not be blotted out from Israel.
신 25:7 그 남자가 자기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경우에, 홀로 남은 그 형제의 아내는 성문 위의 회관에 있는 장로들에게 가서 '남편의 형제가 자기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잇기를 바라지 않으며, 남편의 형제의 의무도 나에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고 호소해야 합니다.
Dt 25:7 However, if a man does not want to marry his brother’s wife, she shall go to the elders at the town gate and say, “My husband’s brother refuses to carry on his brother’s name in Israel. He will not fulfill the duty of a brother-in-law to me.”
이러한 결혼법을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 또는 ‘수혼법(嫂婚法)’이라고 합니다. 이 ‘계대 결혼’의 풍습은 모세보다 훨씬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와 고대 근동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풍습(창 38:8-11)이었는데, 모세 시대에 이르러 율법으로 성문화(成文化)되었습니다.
‘계대 결혼’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손의 보존
First, the Preservation of Lineage.
형제를 대신하여 대(代)를 이어줄 후사를 낳아 줌으로써, 그 형제의 가문(家門)과 기업을 보존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신25:5-6,시127:3-4)
자손의 번성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종족의 순수성 보존
이스라엘 여인이 이방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여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셋째, 과부의 보호
계대 결혼을 통해서 남편과 사별한 후 의지할 곳 없는 과부를 보호하고 경제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이런 ‘계대 결혼법’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부활을 믿는 자들의 입을 막아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7형제 중 맏이 장가들었다가 자식없이 죽었습니다. 계대 결혼법에 따라 둘째가 형수에게 장가들었는데 또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셋째에서 일곱째까지 연달아 장가들었지만 자식 하나 낳지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형수마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 때에 이 형수는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계대 결혼에 따라 만약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을 낳은 형제의 아내가 되는데 끝까지 아이를 낳지 못했으니 과연 부활 때 그 형수는 누구의 아내로 부활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못한다면 부활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사두개인의 질문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22: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
Mt 22:29 Jesus replied, “You are in error because you do not know the Scriptures or the power of God.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장가도 가도, 시집도 가지만 죽었다가 다시 부활을 하게 되면 하늘의 천사처럼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부활을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무엇일까요?
1. 사두개인의 무지
마 22: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
Mt 22:29 Jesus replied, “You are in error because you do not know the Scriptures or the power of God.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습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이 자식없이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에게 장가를 들어서 후사를 이어 주어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우리 이웃 중에 일곱 형제가 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둘째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했고, 둘째도 자식없이 죽어서 셋째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렇게 막내까지 형수와 결혼했습니다. 그럼 부활 할 때는 어떤 형제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신앙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병 고침을 받고 싶거나, 귀신을 쫓아 내거나 혹은 진리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 사두개파 사람들, 헤롯 당원들은 모두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파 사람들, 사두개파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종교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자하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범죄자들의 얼굴, 흉악한 표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얼굴은 인자하게 하고, 말은 고상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사악한 생각들로 가득했습니다.
사람의 얼굴, 사람의 말과 사람의 마음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지만 우리는 사람의 외모밖에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외모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지금도 사두개인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다니면서도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죽어봐야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믿지만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부활을 믿지 분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전 15:1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1Co 15:19 If only for this life we have hope in Christ, we are of all people most to be pitied.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오직 이 세상 것만 바라며 사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사두개파 사람들은 아주 불쌍한 사람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이 세상의 것만 바라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이 세상에만 목적을 두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참된 신앙인들은 이 세상에 아닌 주님이 계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편지 하면서 이 점을 권면합니다.
골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Col 3:1 Since, then,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set your hearts on things above, where Christ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God.
골 3:2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Col 3:2 Set your minds on things above, not on earthly things.
예수님 이 다시 오실 때 부활을 믿지 않고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 믿음을 갖지 못한 것 일가요?
예수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 성경에 대한 무지
사두개파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종교 지도자들이었고, 성경도 읽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성경을 읽는다고, 성경 공부를 하고 또 성경의 말씀을 듣는다고 모두 진리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이단들이 있고, 올바르지 못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족들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지혜를 모두 가지시길 축원드립니다.
고린도 교회에 부활을 믿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지 대해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전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Co 15:12 But if it is preached that Christ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how can some of you say that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고전 15:13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Co 15:13 If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not even Christ has been raised.
고전 15:14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1Co 15:14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our preaching is useless and so is your faith.
고전 15:15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1Co 15:15 More than that, we are then found to be false witnesses about God, for we have testified about God that he raised Christ from the dead. But he did not raise him if in fact the dead are not raised.
고전 15:1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1Co 15:16 For if the dead are not raised, then Christ has not been raised either.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1Co 15:17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your faith is futile; you are still in your sins.
고전 15:18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Co 15:18 Then those also who have fallen asleep in Christ are lost.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올바른 신앙생활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도 하면 아니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부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도 믿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다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한 첫 번째 이유가 성경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에 대해서 무지하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무지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일 목장 연합예배를 드리면서 신앙고백을 다같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신앙고백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I believe in the Almighty God the Father who created heaven and earth.”
즉 우리의 신앙고백 첫 번째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전진전능하신 능력으로 이 세상,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이신 아담을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네,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러 넣어서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지 못하실까요?
만약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장사한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만약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신앙은 시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 앞을 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으냐?”
앞을 보지 못하는 두 시각장애인이 “예, 주님”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According to your faith let it be done to you)”
앞을 보지 못하는 두 시각 장애인은 비록 앞을 보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다시 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 가시밭길을 만나도, 자갈밭길을 만나도, 죽음의 골짜기 한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시 23: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Ps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예수님은 대제사장들, 장로들, 바리새파 사람들, 그리고 사두개파 사람들을 보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탄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 1: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Is 1:3 The ox knows its master, the donkey its owner’s manger, but Israel does not know, my people do not understand.”
하나님이 보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보다, 나귀 보다 더 어리석고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고, 소와 나귀를 부리는 사람이 어떻게 소와 나귀보다 어리석고 무지할 수 있느냐?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두개인들의 모습을 보실 때 이사야 선지자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시는 것 같이 소보다, 나귀보다 어리석고 무지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활이 없다고 믿는 것이 진리이며, 옳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평가 하실 때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
마 22:32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Mt 22:32 ‘I am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예수님은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부활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했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말씀은 모세가 시내산 떨기나무 아래서 출애굽의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3:6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Ex 3:6 Then he said, “I am the God of your father,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At this, Moses hid his face, because he was afraid to look at God.
모세가 시내산 떨기 나무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는 소명을 받을 때 이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죽었고, 이삭이 죽었고, 야곱도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매일 대궐같은 집에서 잔치를 하며 살아가지만 거지 나사로는 몸이 병들고, 누더기 옷을 입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죽어서 하나님의 자비가 없는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갔고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죽었었고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한 모든 성도들은 육체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몸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오라비 나사로 때문에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1: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Jn 11: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The on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they die;
요 11: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Jn 11:26 and whoever lives by believing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부활의 소망을 두고 믿음생활을 하면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합니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부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고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하시길 축원 드립니다.